평화예술운동론1- 평화,평화예술,평화예술조직2001/10/26

평화예술운동론

글 이시우

(1) 평화의 개념
1) 평등과 조화
평화는 전쟁의 반대개념이다. 그러나 전쟁의 중지, 결여 상태만이 평화는 아니다. 평화는 전쟁없는 상태이자, 전쟁의 원인이 소멸되고 지양된 평등과 조화의 적극적 관계를 의미한다.
자연계에서 종 다양성을 보존하고 있을 때 그 계가 온전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사회도 종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물신숭배적 구조는 종의 차이와 공존을 차별과 대립으로 만들어버린다. 하나의 종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의 공존. 이것이 평화의 내용중 하나인 평등이다.
그러나 평등만이 평화의 전부는 아니다. 종 다양성의 평등한 관계는 원론적 관계를 표현할 뿐 살아있는 생활을 표현하진 않는다. 이제 문제는 조화이다. 조화는 조절과 화합이다. 조절은 사회공학적 과정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격렬한 변이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그리고 서로 다른 질적 규정성을 갖는 종과의 관계에서는 긴장과대립을 포함하는 극적 변화와 발전의 개념인 변이가 더욱 본질적 역할을 한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을 기수역이라 했다. 기수역은 민물종이 바다환경에 적응,변화하도록 또한 바다종이 민물환경에 적응,변화하도록 할 수 있는 변이지대다. 만약 기수역을 막아 개발을 해버리면 민물과 바다종의 적응과 공생구조는 파괴되어 버리고 만다. 종의 죽음으로 나타난다. 남북의 군사분계선 또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히 남북을 반쪽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쪽조차도 제대로 반쪽 역할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평화에 고통과 시련의 개념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변화와 질적 발전을 통한 조절을 그 내용에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평화는 즐거움과 함께 고통속의 보람이란 의미도 갖는다. 질적 발전을 통한 종의 조절과 그것을 통한 화합만이 진정한 단합이 된다. 기계적 결합이 아닌 유기적 결합이 된다. 조직원리인 단결과 단합은 결국 다양한 종간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불가능하며 서로간의 질적 변화를 통한 유기적 화합일 때만 가능하다.

2) 홍익평화
결국 평등과 조화는 대립과 투쟁조차 포함하는 더 넓은 장을 전제한다. 평화는 개별과 보편의 변증법적 관계이며 인간 삶의 원리이다. 변증법적 관계란 도식적 관계가 아니라 우연적이며 역동적인 관계이다. 목숨을 건 비약을 전제하는 관계이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전쟁만이 평화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수단일때도 있다. 불교의 열반경에는 [살생을 해서라도 불법을 지켜라]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모순 아닌가? 아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 전쟁과 폭력도 가능할 수 있고 가능했다. 위장된 평화논리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점에 이르면 진정한 평화세력은 폭력적으로 위장된 평화를 폭로하고 제압한다. 그래서 어떤 반평화세력도 전쟁을 할 때는 더 큰 평화를 위하여라고 자신을 합리화 한다. 이때 진정으로 더 큰 평화의 기준은 무엇인가.
나는 사람중심의 이익과 요구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이익이 더 넓게 실현 되는 것, 즉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 더 큰 평화의 기준이다. 사람의 이익이라는 기준만이 강조되면 그것은 아전인수격의 편견을 만들수도 있다. 그러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함]에는 자기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타자를 지향하는 긴장이 전제 되어있다. 데카르트는 나를 나이게 하는 회의라는 정신적 긴장을 통해 관성적 이성에 대해 주체적 이성이라는 타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는 계급이란 타자를, 호치민은 민족이란 타자를, 국제대인지뢰금지켐페인은 인류라는 타자를 발견하게 했다. 내마음의 평화로부터 계급과 민족과 인류의 평화로 나아가는 역사발전 과정에는 항상 지금의 나와 우리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려는 긴장과 실천이 있었던 것이다. 그 속에선 때론 전쟁도 진정한 평화의 수단일 수 있다는 역설이 가능하다. 문제는 평화가 목적인가? 전쟁이 목적인가?이다. 수단으로서의 평화가 아닌 목적으로서의 평화는 홍익이란 장에서만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평등과 조화의 변증법적 연관은 사람을 중심으로 홍익이라는 장을 중심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타자를 향한 결사적인 비약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보자.

1. 개인(시민)과 평화의 연관 :
시민혁명을 통해 시민은 역사에 등장했다. 시민은 역사적 성과물이었다. 시민은 중세 교회의 권위에 대항한 루터의 종교개혁에서부터 그 정신적 뿌리를 찾아 볼 수 있다. 그전에 르네상스가 있었지만 르네상스가 발견한 이성은 금방 관성화 되고 말았다. 예술적 기획은 교회의 면죄부나 부패를 막는데는 한계를 보였고 예술도 매너리즘에 빠지고 만다. 루터의 역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양심의 개념을 확립하므로서 개인이 어떻게 교회의 권위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었다. 오늘날에도 그 가치가 전혀 손상되지 않는 저 유명한 말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결국 양심이란 개념을 구체화한 것이다. 교회의 불평등에 대항할수 있는 양심의 주체를 발견함으로서 종교개혁은 역사상 의미있는 운동이 되었다. 데카르트는 종교개혁후 다시 관성화되는 이성의 존재를 발견하고 나란 주체가 관념이 만들어내는 불평등의 구조에 끊임없이 회의,반성하지 않으면 안됨을 밝혀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은 생각(이성)이전에 생각하는 나의 존재가 전제되어 있다. 주체가 전제되고 이성을 재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이말의 본뜻은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해석되어야 한다. 경험주의와 계몽주의를 거쳐 프랑스대혁명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양심을 가진 주체(루터)와 양심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는 주체(데카르트)와,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는 주체(스피노자), 실천과 연대를 통해 완성되는 주체(프랑스대혁명)를 발견한 것이다. 자유,평등,박애에서 박애란 ‘동지애’의 뜻으로 나에서 너로의 관계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역사적으로 증명했다. 결국 개인도 타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를 통해서 사회적 개인일 수 있다는 원리를 증명한 것이다. 평등은 결국 타자에 대한 사랑을 통해 조화로 나아가고 진정한 평화가 달성됨을 발견한 것이다. 시민과 개인은 평등과 조화의 정신에 의해 역사적으로 태어난 것이다.

2. 지역과 평화의 연관 :
지역에서의 평화란 문제는 지역차별에 대항하여 지역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저항적 노력으로부터 생겨난다. 차별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고 이 저항은 평등에 대한 지역민들의 근원적 요구에 기초하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의 기초를 지연(地緣)을 토대로 이해한 베버에 의하면 데모크라시의 어원이 된 고대 희랍의 데모스(demos)가 거주지를 기준으로 한 지역공동체 또는 지연적 시민집단을 뜻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와 대비되는 고대 희랍의 공동체 개념으로는 혈통 또는 혈연공동체가 있었다. 이것은 도시에서는 ‘퓔레(Phyle)’, 농촌에서는 ‘에트노스(Ethnos)’로 불렸다. 고대희랍의 도시국가 폴리스는 일찍이 데모스들, 즉 데모이(demoi:데모스의 복수)로 불리는 도시의 구획된 지역공동체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폴리스의 역사에서 군주정과 귀족정치하에서는 폴리스의 정치 권력이 이 데모이에 소재하는 것이 아니라, 혈연으로 구성된 에트노스들에 소재했다. 따라서 폴리스의 헌정적 기틀, 즉 국기國基는 권위,발언권,세도에 있어서 혈통적으로 차별화된 에트노스들의 ‘형제적 동맹체’였다.(…)
이에반해 ‘데모크라티아(demokratia)’, 즉 민주정은 지연과 지연적 시민공동체가 정치적 의미를 갖는 지배체제이다. 이 데모크라티아에서는 혈통과 혈연이 정치적 의미를 잃고 제식과 축제등의 문화영역과 가족 및 친족등의 1차적 사회관계로 축소되었다. 이 데모크라티아는 데모스(Demos)와 크라티아(Kratia;지배 또는 권력)의 합성어로서 데모스들, 즉 데모이의 형제적 동맹, 즉 등권적 지역연합에 기초한 지배체제를 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폴리스의 ‘민주화’란 군주정과 귀족정의 기초인 에트노스적, 가부장제적 동맹체제를 데모이의 자유평등한 연합체제로 대체하는 것을 뜻했다.(…)
폴리스내에서 일정지역에 속하는 시민의 자격은 — 탄생과 더불어 결정되는 혈연처럼– 숙명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임의로 지역을 선택하여 이사감으로써, 즉 거주지를 옮김으로써 공동체에 대한 소속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개인의 자유선택 사항이다. (지역패권의나라 황태연지음 – 도서출판 무당미디어- 307~309쪽)

지역에서의 전근대적, 신분적 차별을 극복하고, 지역공동체에 속한 개인들의 평등한 연대로서의 민주정의 이념은 근대 민주주의의 근원적 기초로 다시 등장하게 된다. 지역내에서의 불평등과 지역간의 차별에 대한 저항적 지역주의는 근원적 민주화운동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나 지역에서의 평화는 평등을 향한 투쟁뿐 아니라 지역민들이 서로 단합하여 잘 살고자 하는 요구가 실현될 때 완성되어 간다. 조화의 과제가 남아있는 것이다. 물론 이 조화의 개념에는 차이와 평등을 전제로 한 경쟁과 단합이 포함된다. 문제는 경쟁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관계에서의 경쟁에 있는 것이다. 평화 즉, 차이의 인정과 단합이란 유기체로서의 지역이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3. 민중과 평화의 연관 : 마르크스는 시민혁명에 의해서도 소외되었지만 가장 힘있는 압도적 다수의 집단인 노동자를 발견한다. 다수결이 시민관계를 유지하는 원리였다면 압도적 다수를 위한 평등의 쟁취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민중관계를 유지하는 원리임을 발견한다. 철저한 유물론의 관점에 의해 마르크스는 주체와 타자의 차이와 연관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사상가가 되었다. 시민의 자기세계관에 의해서는 인정되지않던 사회적 토대로서의 물질적 관계를 타자로서 보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자기밖의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인정이야말로 평등정신의 전제이다. 그동안 역사에서 타자로만 존재하던 민중의 존재를 발견함으로서 인간의 범위는 확대되었다. 조화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헤겔의 철학적 성과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창조적으로 발전시킴으로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던졌다. 그는 자본론에서 ‘목숨을 건 도약’이란 말을 통해 조화의 문제가 얼마나 치열하고 역동적이며 우연적인 상황속에서 선택,결정되는가를 말하고 있다. 후세가 오해하듯이 결정론적인 조화론과 그의 생각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홍익의 장에서 획득된 소외민중의 평등권과 결사적 비약을 통한 조화의 개념에서 민중은 평화를 자기발전의 전제로 하고 있었다.

4. 민족과 평화의 연관 : 마르크스와 서구의 진보적 사회운동은 민중이란 타자를 발견했지만 민족을 발견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자기들의 세계인 서구의 민중이었지 동양의 민중은 아니었다. 홍익의 장에서 타자의 범위는 확대되는 계기를 맞는다. 그것은 두가지 방향에서 진행됐는데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레닌의 민족해방주의였다. 서구는 체제의 차이를 떠나 민족이란 타자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한반도를 비롯한 몇 개의 나라를 제외하고 1945년이후 제3세계는 전속력으로 민족 독립을 성취했다. 미소 2극체계는 제3세계의 평등권 쟁취에 의해 3극체계로 되었다가 현재는 미국을 중심으로한 1극체계로 귀결됐다. 2-3으로의 과정은 평등의 확대였다. 그러나 제3세계의 민족은 정치적 독립과 국가발전이란 두 개의 과제에서 정치독립엔 성공하나 국가발전에 실패함으로서, 즉 평등의 쟁취에 따른 발전적 조화의 실패로 3-1의 획일적 집중을 초래한 것이다. 현재 민족 불평등 문제에서 최대의 장애물은 1극체계이다. 다시 1-3으로의 정치군사경제적 관계의 자주성이 획득되어야 하며 이와 더불어 민족국가 발전이란 과제, 즉 발전을 통한 조화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준비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IMF하에서 조화로운 발전의 실패가 결국 평등권의 훼손으로 까지 연결되는 것임을 민족은 경험하게 되었다.

5. 세계와 평화의 연관 : 최초로 세계사를 고찰한 것은 헤겔이었다. 서양사가 아닌 동양사를 자기의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근대화=서구화라는 공식을 만들어낸 바탕이 되기도 했다. 이점은 마르크스도 크게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의 인도 침공을 식민지 침탈로 보지 않고 영국자본주의의 전파,이식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마르크스의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란 개념속에 동양을 타자로서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흔적은 그나마 헤겔로부터의 발전이다. 민족적 정체성의 쟁취와 더불어 대륙적 차원(아시아, 아프리카,남미)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세계화 = 서구화가 아닌, 국가와 대륙간의 평등한 교류와 발전이란 점에서 중요하다. 예를들면 서구의 여성운동은 자기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과 함께 아프리카 여성노동자들의 저임금노동착취에 의해 자신들의 생활물자가 조달되는 세계적 구조에 대해 자각하고 이들의 평등을 위해 싸우는 일을 함께 벌여야 한다. 또한 한국의 평화운동은 일본군, 미군의 전쟁범죄에 대해 싸울뿐 아니라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학살에 대해 사과하도록 하는 운동을 해야한다. 그럴 때 베트남과 함께 미군의 세계전쟁범죄에 대해 함께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세계평화를 위해 작지만 민족적 평등권을 쟁취하는 일과 세계적 차원의 평화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은 둘이 아닌 하나이다. 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과 세계평화NGO의 활동은 국가안보와 더불어 인간안보의 유기적인 통일이 21세기에 세계적 차원의 평등과 조화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임을 보여주었다.

(2) 평화예술이란
평화예술이란 개인,지역,민족,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평화를 향한 사람들의 생활을 그리고, 평화실현에 이바지하는 세계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생활을 그린다는 것은 예술적 반영을 의미하며 이것은 예술이란 사회의식형태의 존재방식이다. 평화실현에 이바지함은 평화예술의 사명으로 예술발전의 추동력이다. 뉴튼이 위치와 속도라는 현상을 통해 힘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속성을 밝힌 것과 같이 평화와 연관된 예술의 존재방식과 사명을 통해 평화예술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예술과 통일예술 ,민중예술, 민족예술등과는 어떤 관계일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추상적 개념에서의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무엇을 정의한다는 것은 종개념과 류개념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다. 우선 평화예술을 종의 개념으로 본다면 그보다 상위개념의 류개념이 무엇인가? 또 어떤 관계로 연관되어 있는가를 밝혀야 한다.
평화예술의 류개념은 세계예술이다. 왜냐하면 평화는 국제정치학적인 범주이기 때문이다. 양차대전을 겪고서 인류는 전쟁을 막기 위한 적극적 개념의 평화를 이야기 하게 되었고, 유엔이 생겼으며, 국제정치학이란 학문이 생겼다. 이는 평화의 세계성을 의미한다. 평화는 결코 일국적 차원이나 민족적 차원에서 해결될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평화는 개인적 차원에서부터 민중,민족적 차원까지, 도 영역별로는 사상, 문화적 차원. 군사적,경제적 차원등 모든 부분에서 중심고리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두의 운명을 결정하는 정치적문제에서는 세계적 차원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 이들 다양한 고리가 어떻게 연관되고 발전되는가는 그 동안의 역사가 보여준다.
칸트는 개인(시민)적 관점으로부터 출발하여 민족사이의 관계까지도 포함하는 보편적 벌률상황으로부터 영구평화론을 제창하게 되고 유엔의 이론적 토대가 된다. 자유주의적 평화학파는 국제 사법

재판소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등을, 마르크스는 계급적 관점에서 인터내셔널을, 레닌은 사회주의 국가와 제국주의국가 사이에 평화공존정책을, 제3세계운동에서는 민족자주정권 쟁취를 전제로 한 비동맹운동을, 90년대는 유엔의 경제사회이사회등을 개혁하기 위한 비정부기구 평화운동세력들의 연대운동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현재에는 미국방성의 연구보조를 받고 군산복합체의 무기수요 정책을 거드는 학자들의 현실주의 충돌이론으로부터, 친제국주의 성향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갈등연구’나 ‘위기관리론’의 비인간성을 폭로하는 정통주의 평화연구자들, 전쟁의 사회적 토대를 분석하고 사회체제의 변혁을 문제삼는 사회주의 평화론자들등이 다양하게 평화의 문제를 군사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사회심리등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연관은 궁극적으로 세계라는 범주에서만 종합되고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런 이유로 평화예술의 상위개념은 세계예술이다.
(통일예술의 류개념은 민족예술이다. 통일이 민족단위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민족적인 것이 모두 세계적인 것이 아니라 민족적인 것 중에 세계보편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평화예술과 세계예술은 어떤 형태로 연관되는가?
평화란 인류가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즉 평화란 세계예술의 과제별 영역에 따른 분류개념인 것이다. (세계예술의 존재별 영역은 인류예술이 될 것이고, 역사적 영역은 근대,현대,탈현대예술등이 될 것이다.) 평화예술이 세계예술의 과제별 영역이기 때문에 그 정의에 과제에 대한 목표 즉 사명이 포함되는 것이 합당하다.
이로부터 평화예술의 정의는 예술의 존재론적 내용과, 사명을 밝히는 내용으로 되어야한다.
“평화예술은 평화를 향한 사람들의 생활을 그리고, 평화실현에 이바지 하는 세계예술”이다.
평화예술의 국제적 성격은 모임의 형태에도 반영된다. 그렇다면 그 관계는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할까?

(3) 평화예술의 모임 형태
평화예술인 국제연대는 모임 형태로서 연대라는 이름을 정했다. 연대란 개념에는 어떤 의미가 포함되는가?
80년대를 거쳐 민중이 사회운동의 주체로 인식되며, 그 모임형태로 제기된 것은 조직이 었다. 90년대 시민이 사회운동의 주체로 인식되며, 그 모임형태로 제기된 것은 연대나 네트워크이다. 연대냐 조직이냐를 판단하는 문제는 그래서 간단치 않은 역사적 과제이다.
여기서 연대와 조직의 형태를 분석해 보자
연대와 조직은 사람간의 소통과정을 중심으로 그 차이가 구별된다.
연대는 예를 들면 평화단체– 평화예술행사–예술단체의 소통체계를 갖는다. 즉 평화운동에 예술단체가 공감하든 예술운동에 평화단체가 공감하든 질적으로 서로 다른 개체나 공동체가 이념이나 행사에 대한 공유가 발생함으로서 연관되는 체계이다. 여기에서 서로 다른 질적개체는 보통 동등한 가치의 교환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때 소통관계를 맺는다. 무엇이 동등하게 교환됐는가는 아무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돈 한푼을 받지 않고도 예술적 의의에 스스로 만족해서 이 소통관계에 응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일수도 있다. 각자의 사용가치의 충족이란 점 말고는 아무것도 그들 사이에 무엇이 오갔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돈 일수도, 인간관계 일수도, 미래에 대한 전망일 수 도 있다. 또한 반드시 동등한 가치의 교환을 전제하지도 않는다. 동등하지 않고 일방에게 유리한 것일수도 있다. 준만큼 받지 못했다고 해서 소통이 차단 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희생과 봉사로 생각하고 자기만족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대관계는 본질적으로 우연적이다. 또한 역동성과 함께 비합리적 요소도 갖고 있다.
조직은 어떤가?
조직은 예를들면 조직 — 예술행사 — 조직+α 의 소통체계를 갖는다.
조직의 과정은 기본적으로 축적에 있다. 동일한 요소를 반복하는 것 같지만 이전과 다른 발전된 요소를 추가시키는 과정에서 조직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가치를 확대시키고 재생산 한다. 조직은 질적으로 다른 개체와의 우연적 관계에 만족하지 않고 +α를 통하여 조직적 축적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이러한 조직적 축적에 실패한 행사는 그야말로 무가치 한 것이 된다. 이로부터 조직은 사람들의 동원이나 언론의 주목이나 이윤을 목표로 하는 속성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목표는 조직을 소통체계의 보편적 권위를 획득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비유컨대 상품교환에서 어디서나 교환의 권위를 갖는 화폐처럼, 누가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신뢰를 갖게하는, 그래서 후원금도 내고 자원봉사도 하게 할 수 있는 권위 또는 권력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러한 권위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연대적 관계, 즉 권위 이전에 교감과 유대의 우연적이며 역동적인 가치관계가 생략되기 쉽다.
국제관계는 보통 수평적인 연대형태를 갖는다. 이것은 민간단체들 뿐 아니라 국가기구들에서 조차 그렇다,이에 비해 국내관계는 수직적인 조직형태를 갖는다. 이것은 국가기구 뿐 아니라 민간단체들도 그렇다. 이런 현상적인 이유로 연대를 조직적 관계로 가는 낮은 단계로 인식하는 것은 오류이다. 연대관계와 조직관계는 뚜렸한 질적 차이를 갖는 관계이다. 따라서 연대관계에서 어떻게 빨리 조직관계로 발전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성급할 뿐아니라 잘못이다.

연대에서 각 단위의 질적차이는 긴장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연대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순간적이며 동등한 가치의 교환을 전제하지만 이것은 이상적인 경우이고 소통에는 시간이 걸린다. 미적으로 먼저 자각한 단체와 그렇지 않은 단체사이의 공백에서는 미적정보에 대한 일종의 채무상태가 발생한다. 여기서 미적 정보는 가르치는 단체와 배우는 단체 사이의 교육에 의해 해소 되기도 하고, 지시에 의해 해소되기도 한다. 교육은 수평적이고 비적대적인 관계에서 소통주체간의 차이를 해소하는 방법이고, 지시는 수직적이고 적대적인 관계에서의 소통방법이다. 예를들면 칸딘스키는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란 책에서 예술가전위와 대중사이의 차이를 극복 불가능한 수준 차이로 규정한다. 또한 추상미술이라는 ‘낯설게 하기’효과를 통해 대중을 미적 열등감에 빠뜨리고 일종의 미적 채무상태를 만든다. 그리고 미적 채무관계에 빠진 상대는 그것이 자기 주체 실현의 목표가 되고, 미적 채권자는 미적 채무자에 대해 미를 통한 지배를 관철시키게 된다.
2차대전후 치열했던 전위예술붐이니, 고급문화니, 신세대문화니, 운동권 문화니 하며 특정한 문화를 형성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미적 채무관계를 통해 소통체계를 지배하려는 의도이다.
대화와 소통은 항상 주체간에 동등한 상태로 준비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보통의 경우는 서로간의 차이와 불평등 상태를 전제해야 한다. 이러한 차이를 신비화 시키거나 무시하면 의도와는 다르게 차이를 차별로 발전시키게 된다. 따라서 연대관계에서 존재하는 소통 수준의 차이는 반드시 조직적 지도나 지시의 형태로만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가르치고-배우는 교육적 관계가 전제됐을 때 연대에서의 동등한 가치교환이 가능해진다. 물론 여기서의 교육은 특정사업 영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주체들이 처한 근본적인 차이로부터 전제되는 개념이다.
이러한 가르치고 – 배우는, 채권 – 채무 관계는 서로 그 자리를 바꿀 수 있다. 괄목상대란 말처럼 어제는 배우던 사람이 오늘은 가르치는 사람으로 변해 있을 수 있는것이다. 모임관계에서 적대적인 의도만 아니면 이러한 관계는 지시가 아니라 교육으로서 충분히 해소되고 서로 평등발전한다.
그러나 조직은 강령이나 규약으로부터 시작하여 활동의 성과를 그 기준에서 축적,발전 시킨다. 사람간의 관계가 깨어져도 조직 자체를 재건할 수 있는 것은 조직이란 소통능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대관계에서 사람이 떠나면 모임의 의미는 상실되지만 조직은 사람이 적거나 한명만 남아도 그 체계를 재건 할 수 있다. 조직이란 형태 자체가 어떤 식으로든 축적된 조직의 권위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연대관계에서 가르치고-배우기는 평등한 대화의 조건을 만들기 위한 것이지만, 조직은 그보다 조직가치의 재생산이 더 중요하다. 조직에서 성과 없는 일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직은 권력지향적이고 연대는 권력해체적이다.
요즘엔 조직관계에서도 연대관계를 팀이니 사업단이니 하는 형태로 수용하고 있고, 연대관계에서도 조직관계의 계통체계를 세울려는등 서로간의 상호작용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기능적인 시도일때는 예외 없이 실패한다. 연대와 조직은 예를들면 시민이란 주제와 민중이란 주제를 통일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차이와 연관을 통일되게 고민해야 한다. 평등과 조화의 원리가 모임의 형태에서 어떻게 실현될 것인가? 우리에게 창작물이나 이론 비평의 성과 못지 않게 모임의 성격과 형태도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