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식선생님 영전에2005/01/10

사상가에게 있어 시대가 마지막 기회이듯 시대 또한 사상가가 마지막 기회이다.

이시우

아침 볕이 좋아 비누발 받지 않는 찬물에 무턱대고 빨래를 하는데 날이 흐려지더니 힘 없는 눈발이 날린다. 널기도 전에 얼어버린 빨래를 널고 나서, 한 사상가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기억이 곧 역사로 정의되는 시대와 본질만이 역사로 해석되는 시대의 중간쯤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사상가’는 시대의 본질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시대의 본질로 만들어 가는 실천가란 점에서 해석의 시대에 속하는 인물로 비춰질지 모른다. 본질적 가치보다 현상적 가치를 더 많이 기억하고자 하는 탐욕과 다양성의 사회에서 ‘한 사상가의 죽음’에 무관심한 이유가 거기에 있으리라.

가치는 다양성이 본질이지만 사상은 정확성이 본질이다. 개인에게나 민족에게나 피할 수 없는 순간이 도래할 때가 있다. 우린 이런 순간에 이르러 운명을 생각한다. 운명은 선택을 강요한다. 처세를 용납하지 않는 순간이 바로 운명이다. 능란한 처세가 가능한 다양성의 사회로 진입한지 오래지만 아직도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회이다.
다양성과 더불어 정확성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직 우리시대엔 진정한 유연성인 것이다.

김남식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10여년 전 동학사 계곡 어느 민박집에서의 강연회에서였다. 강연은 시작도 안되었건만 여담 시간에 선생은 이미 국제정세를 일괄해주셨다. 그리고 당시 화제가 됐던 박홍총장의 주사파발언에 대해 누군가 묻자 그에 답하셨다. 박홍총장이 어느 사석에서 인민군가를 부르고 ‘단선연대 복선포치’같은 노동당 용어를 구사하더라는 것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주사파를 비난하고 나선 것으로 봐서 안기부의 공작에 걸려든 것이 아닌가 의심되고, 아마 이것은 대대적인 공안정국을 예고할 것이다.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경고는 예언이 되었고 얼마 뒤 구국전위 사건을 비롯해 10여건의 조직사건이 터졌다. 그의 예언이 나에게도 운명이 되었다.

나는 선생님의 강의에서 지정학과 역사를 배웠다. 선생님의 강의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등의 정세변화를 논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지정학에 대한 강조, 이는 우리 민족의 운명적 사고방식이다. 그 내용이 어떤 것이든 지정학적 사고가 호흡처럼 익숙해지도록 연습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선생님은 100년전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시더니 오늘의 문제까지 흩어진 구슬을 꿰듯 엮어내셨다. 나는 그 거대한 이야기를 듣고서야 통일운동의 방점이 분단보다도 민족에 찍혀져야 함을 깨달았다. 포와 폄과 심을 한 강의에서 고스란히 챙긴 행운이었다. 시대의 영광을 누리기만 하는 후배가 시대의 영광을 개척해 온 선배들의 삶을 이해하는데는 넘지 못할 벽이 있었다. 사상이 논리인 사람과 생활리듬인 사람에게 있는 계선처럼… 그럴 땐 별 수 없다. 따라 배우는 것이다. 흉내내고 따라하다 서서히 익혀지는 것이다. 그 뒤로 선생님을 직접 뵌 것은 두세차례 뿐이지만 선생님의 사유체계가 나의 언어에도 감염되어 있었음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사상은 문체를 통해 표현된다. 선생님의 문체는 폭넓고 신중한 만연체였다가 어느 순간부터 간결체로 바뀌기 시작하셨다. 변려체를 넘어 수사체가 각광받는 시대에 춘추체로 돌아가신 듯 직설적이셨다.
조선시대 노론의 적자로서 율곡학을 비판하고 유물론인 녹문학 개창한 임성주란 사상가가 있다. 그리고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보다 위대하면서도 역사의 주목을 받지 못한 여성철학자 임윤지당이 있다. 임윤지당은 임성주의 여동생이었다. 임성주는 전대의 사상을 세밀하게 비판하고 검증해야 할 필요 때문에 신중하고 객관적이었다. 임윤지당은 시집살이 뒤에 찾아온 말년의 철학적 사색을 통해 오빠의 사상을 현실에 뿌리내리게 하였다. 사상의 언어는 간결해졌고 명쾌해졌다. 오빠의 복잡한 논리가 함축되어 단문으로도 그 깊이를 표현할 수 있게 되므로서 녹문학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김남식선생님의 문체의 변화는 임성주와 임윤지당의 몫을 혼자서 감당하신 결과인지 모른다. 나는 아직 과거 문체의 기억에 머물러 있는데 선생님은 저만치 나가계셨다.

사상은 투쟁을 통한 경험과 방대한 지식과 정확한 관점을 필요로 한다. 한 시대가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춘 존재를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상가가 가르키는 손끝만을 보다 제 스스로 달을 봐야하는 후배들의 성숙이 이제 시대의 짐칸에 남겨졌다. 관념의 강단에서 만들어진 사상의 그릇은 담력과 용기와 사랑의 사상을 담기엔 작고도 작다. 시대의 아픔과 인연 맺지 못한 사상이 불구이듯 사상가에게 있어 마지막 기회는 시대이다. 그러나 시대에게 있어 마지막 기회는 사상가이다. 사상가가 대접받지 못하는 시대 보다 사상가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는 더 큰 절망임에 틀림없다.
오늘 이 시대의 걸출했던 사상가 한분을 잃었다.
김남식 선생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