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제3차 범민족대회 참가기2005/02/01

92년 제3차 범민족대회 참가기

나리 나리 개나리 봉천 놀이마당 김나리 회장님

범민족대회를 준비하면서…..
범민족대회를 준비하면서 범민족대회에 참가하고자 하는 여러 단체에 연락을 하고 난지 하루만에 중대 여학생 휴게실을 비집고 들어가 차려진 범추본 사무실에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놀이마당 0 00 회장님. 나이는 나와 같았고,현재 중학교 미술선생님 이셨다. 또 한분은 ##놀이마당의 윤 ++ 춤패 패장님 이셨다. 일단 학생과 함께 하여 범민족대회가 전문문예단체의 보여주기식의 공연이 아니라 대중문예조직의 서툴지만 자기 대중의 의지가 결집된 공연으로 하자는 의지를 가지고 본대회 가장 중요한 부분인 축하공연을 우리가 맡아하자고 결의를 높였다.
수날 수일을 통일운동에 나서는 대중적 주인공을 찾아 그 주인공이 되어 울고 웃고 가슴찡하게 사고를 거쳐 작품을 탄생시켰다. 누구나 다 이것이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창작의 희열을 맞보았다. 윤++ 아줌마는 자기성격은 원래 무뚝뚝한데 여기와서 왜 이렇게 웃음이 많아졌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하면서 까르르 자지러졌다. 그런데 중대 학생들이 오랫동안 범민족대회를 빛내보자는 결의를 가지고 준비해 온 창작물과 서로 조정이 안되고,더운 날씨에 서로 애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작품을 서로 절충도 해 보고했지만,결국은 우리가 양보하는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축하공연에서 철수할 때 그 서운함엔 우리 사무국원들이 어찌 위로를 해줘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이번 범민족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범민족통일한마당을 더 내실있게 준비하자고 서로 마음을 다 잡아먹자 자신들에게 부담스럽게 쏟아지는 눈길을 의식하고 부담을 주지않아야 겠다는 뜻으로 어제일은 훌훌 털어버리고 한마당 앞풀이 공연에 열중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사무국원들과 내가 보기에 참 아름다웠다. 더구나 5시간이 넘는 회의를 밥먹듯이 하는 상황에서 쉬는 시간을 주면 어린 소녀들 처럼 폴짝폴짝 뛰어나가 우아하고 멋스러운 고성오광대 기본 춤사위를 제멋에 취해 숨을 몰아치면서도 차분하게 장단을 먹이며 추는 것이다. 지켜보던 우리들은 서로 손바닥을 치며 “이야 저게 바로 진짜 문화패다” “야, 뭐해 임마. 나와서 같이 춰.” “알았어요.” 쫄래쫄래 따라나가 어설프지만 고상한 신명이 있는 춤을 같이 추었다. 이때 든 느낌은 ‘문화는 머리속에 있는 것이 아니요 가랑비에 젓듯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대회장에 들어가서…
“봉천놀이마당을 비롯해서 계속 참가하고 있는 대중들이 재미있어 하면서 이 대회의 의의를 느끼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요?”로 시작된 회의는 상황분석을 넘어 우리의 역동적인 전술구사와 조직체계로 대회를 잘치루기 위한 방법으로 진행하다 보니 급기야는 1시 경에 진을 빼고,조는 가운데 2시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
똑똑
“계세요. 어머 있었구나. 인제 끝났어요. 이 깃발을 어떻게 집에까지 들고갈까 고민했는데 택시 타고 지나가다 불켜진 걸 보고 혹시나 해서 차세우고 들어와 봤어요. 야아– 잘됐다. 이거 여기 놓고 갈께요. 근데 너무 피곤하겠다. 여지껏 회의 했나보네.”
우리가 이 시간에 왠 일이냐고 물을 틈을 주지않고 겨우 “아니 이 시간에 왠일이예요. 새벽부터 지금까지 이 깃발을 만들었어요?” 라고 물었을 땐,”그럼 수고하세요” 하고 벌써 가로등 밑으로 총총걸음을 떼고 있었다. 문 앞엔 하루종일 범추본 경비로 아낄려고 전날 동대문 포목상에 갔다가 한개당 공임이 8,000원씩 든다고 해서 20개면 160,000원 “악—” 하고는 손수 재봉질한 깃발 한뭉치가 놓여져 있었다. 턱이 벌어진채로 돌아와 시작한 재봉질 이었다. 회장직책으로 그런 일속에만 매달리면 어떡하냐고 빈축도 사고,춤패패장이 자기네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맡겨 주겠다고 했는데도 그 아주머니에게 폐를 끼친다고 손수 박음질한 빨간 바탕에 파란 수술이 달린 깃발더미에서 깃발 하나를 꺼내 보았다.

정성스레도 박았네 붉은 깃발.
꼼꼼하게도 감쳤네 파란 수술.
멀리서야 휘날리는 깃발의 박음질이 보일리야 없지만은
누구나 한번 이 깃발을 휘날려 보고 싶을 걸
범민족대회에 참가한다는 자부심을 갖기도 어려운데
한낮 천조각에 불과했던 너희가 꼼꼼한 재봉질로
하나가 되어서는 창공에 휘날려 통일의 신심을 폭발시킬
정치적 생명을 얻었구나.
깃발 하나를 펼쳐들어 공중에 휘날려 본다.
퍼더덕 푸드덕
물살 가르듯 공기를 가르며 힘차게 굽이쳐 내려앉는
붉은 깃발은
굽이치는 펄럭임으로
깃발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
허공에 숨어있던 생명의 기운이 손끝을 타고 전해진다.
범민족대회에 참여한다는 긍지와 남에겐 한치도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고상한 품성과 4반세기를 쌓아온 성실함을 지닌 어머니로 하여
태어난 저 붉은 깃발은 그냥 붉은색기가 아니었다.
깃발이 가르고 지나간 허공을
씽— 하고 달리는 택시 안에서 우리 김나리 회장님은
눈을 찡긋 감고 손을 흔들며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붉은 깃발보다 더 붉은 단심이 김나리 회장님 가슴에 있었네
밤하늘의 별님이 내려다본다
새로운 동지를 만나 것도 기쁜데 천금보다도 귀중한
깃발을 선물 받은 범민족대회.
다시한번 가슴이 벅차 오른다.

박 종률의 <적기가>
상황본부에서 한사람이 급히 뛰어왔다. 갑작스레 방 배정을 하다보니 어르신들 모실 방이 마련되지 않아 방배정이 될때까지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 약식집회를 마련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문예위에서 간단한 공연을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노래패가 피곤해서 목이 상할텐데 각오를 하고 나섰다. 나는 뒤따라 가 보았다.
가수 박 0률이 앞에 무슨 노래 하나를 끝마치고 다음 노래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다음으로는 적기가를 불러드리겠습니다.”
그 소리에 맨앞줄에 앉아 계시던 장기수 어른들은 뜻밖인듯 “아!–” 하는 낮은 탄성과 함께 금시 어린애가 무얼 애타게 기다리는 표정으로 돌아서 긴장과 기대로 울렁거렸다.
민—– 중—— 의—— 기——
붉— 은—– 기—— 는
어른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박 0률의 느리며 육중하게 울리는 소리가 땅은 울리는 듯 하더니 그 울림이 한결같이 어르신들의 가슴을 울리고 바위같은 입술들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전— 사— 의— 시체를— 싼— 다
시— 체— 가— 썩어 굳기 전에
혈조는 깃발을 물들인다
높이올려라 붉은 깃발을 그 아래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자야 갈테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어른들의 눈은 취하듯 잠겨있고,옷만 다르지 빨치산이 되어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고 또 흔들었다. 한번 끝난 노래는 다시한번 격앙된 목소리로 불려지고 빨라지는 노래 소리에 한분 두분 자리를 차고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노래가 끝나자 부산 지역의 장기수 한분이 일어나 “내가 진행하는데 방해가 안된다면 꼭 한마디 하고 싶소” 하며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으셨다. 벅찬 감격을 자제하지 못하시는지 잠시 말을 잊지 못하시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떼시었다.
“우리들은 민족해방과 통일을 위해 싸우다가 동료들을 지리산 까마귀 밥으로 만들고 감옥에서 아무일도 못하면서 수십년을 부끄럽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꼭 해방은,통일은 오리라는 신념을 가지고 전향하지 않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설마 하던 그 설마가 바로 이 자리에서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이 감격은 흑흑—– 뭐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조국의 통일을 위해 싸우시는 여러분 이 늙은이들을 대표해서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시간을 잘 뗴우기 위해서 즉석에서 마련되었던 어른신들.단체 하나되는 밤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 자리를 서로가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던 자리였던가를 상기시켜 주었다. 전설같은 역사의 노혁명가와 현재 통일운동을 거침없이 밀고가는 기관차.무서운 의지와 뛰어난 실무력의 젊은 통일일꾼들을 뜨겁게 맺어준 박 0 률 동지의 적기가는 그날 밤에도 그 다음 날에도 여러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맴돌며 통일운동의 장대한 역사,피어린 운동의 전통의 대하라는 든든한 토양을 우리가 지금 여기에 흔들림없이 서 있음을 깨우쳐 주었다.

전경들의 중대침탈 – 잊혀지지 않는 그 시간

‘오늘 새벽에 쳐들어온다’
‘의혈대 학생회관 앞으로 모여라’
풍물패 연습을 마치고 뒷풀이를 너무 신나게 하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의혈대의 힘찬 노래 소리를 뒤로하며 범추본 사무실로 올라와서도 역시 전대협은 든든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저렇게 역할분담이 되니까 집행부에서도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는 거지,일단 새벽까지는 잠을 좀 자두자,혹시 있을 일에 대비해서 강희남 목사님 옆에 자리를 잡고 술기운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잠에 빠져있었을까? 기상인지 비상인지 여기저기서 외쳐대는 여성동지의 목소리에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야 했다.
‘후문에 병력이 배치되고 있어요’
강 목사님을 일으켜 드리고 방 밖으로 뛰어나오니 전국연합 자통위 국장 등 몇몇 사람이 특히 더 당황하고 놀란 눈으로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상황이 목전에 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실무자가 다시 급히 뛰어올라와 ‘잠깐만요. 지금 치고 들어온게 아니고 후문에 병력이 배치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온 것 뿐입니다.아직은 여유가 있는 상태입니다.’ 라고 하자 괸히 긴장했었다는듯 풀어지는 사람도 있었고, ‘예비훈련 이었구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뒤에서 ‘지금 이렇게 긴장하고 있을 때가 아니예요. 학생회관 사수는 포기해야 합니다. 빨리 공대로 본부를 옮겨야 된다니까요’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우리 사무국원 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침탈예고를 듣고 중대를 한바퀴 훓고 다닌 모양이었다. 결론은 사수불가 였단다.빨리 빠져나가자고 제안하려 했으나,지키자는 의견들이 워낙 완고해서 명함도 제대로 못내민 모양이었다. 그래서 끝까지 개길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본것이 공대였단다. 왜냐하면 공대가 산비탈을 따라 지어진 중대 건물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고,1,2,3층까지 중요한 기계를 도난방지 하기위해 쇠창살로 창문을 다 막아논 상태라서 정문과 계단만 사수하면 적의 침탈을 막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단다.
그런데 몇몇 집행단위에서 범추본 사무실이 있는 학생회관 사수를 고집하며 미적거렸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 상황에선 공대 이동밖엔 아무런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그 말은 그대로 명령이 되어 공대로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한층씩 올라갈 때마다 책상과 의자를 다 꺼내 바리케이트를 치며 7층과 옥상까지 올라갔다. 그때까지 의혈대에 대한 전적인 신뢰로 아침 등교시간까지 견딜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었으나,건물에서 내려보니 후문은 너무나 쉽게 무너져 들어오기 시작앴다. 두려움과 긴장감이 지켜보는 실무자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폭도처럼 마구 부수고 쏘아되며 공대 앞마당까지 진입한 경찰병력은 대치선을 대놓고 필사적으로 싸우는 의혈대를 향해 야금야금 전진해 오고 있었다. 이때쯤 의혈대의 조직적인 통제가 무너져가고 개인적으로 불필요하게 꽃병을 던지고 있어 지켜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었다.
공대 정문 계단 앞까지 진출한 놈들의 대치선이 엄호하는 가운데 병력은 학교 안으로 안으로 석탄이 난로불 위로 쏟아져 내리듯이 최루탄이 사방을 불질하고,벽화에 먹칠을 하고,땅바닥 그림에 페인트를 있는데로 쏟아부어 광란적인 전위예술을 하고 있었다. 예술작품에 대한 야만적인 파괴는 야수 그 자체였다. 7층에서 뛰어내려가 한놈씩 붙잡고 때려 눕히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그렇지 못한 상황이 온몸의 힘을 빼내가고 있었다. 이런 충동을 이기려고 7층 복도는 푹푹 뿜어대는 담배연기로 포화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빤히 내려다 보이는 범추본 사무실에 마침내 진입한 백골단은 우선 유리창을 있는데로 깨고 제대로 놓여진 것은 모두 쓰러뜨려 부수었으며,쓰러지거나 잘못놓은 것은 제대로 일으켰다 까부수고,물품 하나라도 짓이기고 까부숴야지 직성이 풀이는 듯 모든 것을 미친듯이 박살내고 있었다. 사방에서 손전등 불빛과 써치라이트가 자신들의 파괴잔치를 축하하고 즐기기라도 하듯이 쉼없이 학교 구석구석을 비추고 돌아다녔다. 왠만큼 들쑤셔졌다고 생각했는지 이제는 서서히 공대건물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잔챙이부터 정리하고 큰놈과 싸워보겠다는 작전이었다. 그만큼 자신만만한 자세였다. 1층 사수대의 헌신적인 싸움에도 불구하고 적들의 건물진입은 성공하고 있었다. 1층의 모든 유리창이 한장씩 깨져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있다가 2층.3층.4층.
이때 쯤에서야 별의별 잡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지난주에 고향집에 내려갔을때,엄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너 장가가기 전에 최고로 위험한 달이 8월이야.관제수가 있단말여.괜히 결혼 앞두고 이 애미 쓰러지게 하지마라.제발 부탁이여’ 점궤는 재수없는 것은 귀신같이 맞는다는다더니…….. 그렇게 자신있다던 전대협의 범대회 사수도 올해로 끝나는건가. 이 상태에서 무슨 무슨 행사가 되겠는가. 북측,해외측에 미안할 뿐이다….. ##놀이마당,**터,@@지부. 우리 동지들은 어떡한다. 계속 안심시킬려고 했었는데 중대에서 깨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겁나서 다시 나올 엄두가 날까. 그래 어떤 일이 있어도 끌려가선 안된다. 한사람이라도 살아남아서 실무력을 복원시켜 내야만 한다. 그래서 범대회 사수의 승리를 대중에게 안겨 줘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이길까,질까를 예측하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 ‘파업전야’에서 마지막 치고 들어왔는데 완강히 저항을 했지만,결국은 구사대에 깨지는 장면이었다. 재수없이 왜 하필이면 그 장면이 생각날까. 어차피 이 싸움은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건대에서 처럼 줄줄이 끌려나갈 수 밖에 없는 거다. 아냐 필사즉생으로 싸우면 이길수 있다. 이 끊임없는 줄다리기에서 판단은 자주 ‘파업전야’가 심어준 형상쪽으로 땡겨지고 있었다. 파업전야에 대한 해석을 내편의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과 함께 ‘영화는 잘 만들어야 돼.경험없는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걸 보고 배우는데 왜 하필 필사즉생으로 싸우니까 이기더라 이거나 싸우는 모습에서 그런 자세가 조금이라도 부족한데가 있었기 때문에 진 것이다가 아니라 싸우는 것은 필사즉생으로 싸우는 것으로 보여주고,싸움은 지는 것으로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지금 나와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한단 말인가. 이건 뭔가 사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애매한 영화를 비판이나 하면서 비겹하게라도 살아남을 생각을 자꾸하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갈등하고 있을 때,’야,올라온다. 옥상으로 올라가’ 그러자 복도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옥상으로 향하는 복도로 뛰고 있었다. 그러나 1,2초 간격을 두고 필사적으로 뛰는 사람과 포기한채 형식적으로 달리고 있는 사람이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그 두 부류의 차이는 불과 한두폭 정도였다.
그 한,두 보폭을 여지없이 갈라놓은 것은 화염방사기 처럼 뿜어져 달려드는 최루가스였다. 한두걸음 앞서던 사람들은 멈짓했다가 독안에 든 쥐꼴이 되는 줄 알면서도 뒤돌아 뛰었다. 패배와 투항을 초조히 기다리는 길밖엔 없는 선택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최루가스를 뚫고서라도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렇게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금방 올라올 줄 알았던 백골단은 뒤돌아 뛴 사람들이 강의실로 들어가 누구누구가 들오온 줄도 모른채 불을 끄고,그래도 달빛으로 방안이 환하자 검은 커텐까지 치고 불이 켜지면 금방 노출될 맨구석 의자 뒤에 숨어서 쪼그려 앉은 다음에야 올라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뱍골단은 7층을 뒤지기 전에 옥상과의 싸움을 해야했다. 많은 시간을 나는 어둠속에서 바로 곁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미치도록 괴로운 마은으로 들으며 내 마음속의 갈등과 싸워야 했다. 나는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에 앞서 이건 7층에 있거나,옥상에 있거나 진 싸움이란 추측으로 미리 단정을 지었고,그 생각이 잘못된 판단임을 알면서도 당장의 최루가스에 그래도 지금 당장은 낭떨어지까지 물러선 몇걸음의 보폭이 있다는 구차한 기회주의에 내 운명을 의탁해 버린 것이다. 바로 윗층인 옥상에서는 ‘피의 불벼락을 내리자’를 계속 불러대며 쇠파이프로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 소리가 대오를 맞춰 규칙적으로 들려올 땐 그래도 안심이 되다가 계속 퍼부어 올라가는 지랄탄 소리가 들리고 잠시라도 쇠파이프 소리가 불규칙하고 약하게 들릴때는 피를 말리는 느낌이었다. 지금 이 깜깜한 방안에 있는 사람을 조직해서 계단서 싸우고 있는 적들의 뒤를 치면 지금의 전세를 역전 시킬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여기있는 누구에게도 그 말은 건넬수 있는 자신이 없었다. 불을 켜고 필사즉생으로 싸우면 오히려 우리가 더 큰 전과를 올릴수 있다는 힘있는 말이 도저히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우선 몸을 벌떡 일으켜 내 스스로 마음을 각단지게 틀어 쥐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서서히 일으켰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어쩌면 내가 눈을 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나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몸은 한치도 일어나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두워도 너무 어두워서 일어난다는 생각만 하고 있을 뿐,내가 일어나는 모습을 전혀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야 여기 들어오자마자 사람들이 검은 커텐을 서둘러 친 것이 생각났다. 복도 쪽으로 난 창문은 이미 커텐이 쳐져 있었고 맞은 편 창문은 열려 있어도 밖에서 볼수 없는 7층 창문이었다. 밖에서 보여지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숨어 있는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 보고 있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내가 만약 몸을 일으킬 의지를 가지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면 사람들이 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따라 일어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당당하게 일어나 보일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 보이는 이 어둠속에서는 내가 어느 시점에 일어서기를 포기해도 볼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내가 일어나고 있지 않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아무것도 안보이는 속에서 유일하게 판단할 수 있는 감각인 소리를 들리지 않게 하기위해 소리내지 않고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였다. 암흑과 정적은 집단의 편이기 보다는 개인의 편이란 사실을 가슴 터지게 마음을 동동거리며 경험해야만 했다. 그렇게 많이 들어 본 광주항쟁에서의 폭력에 의한 암흑시대에 활동 했던 활동가들의 좌절과 변절을 단 몇분의 암흑이 냉혹하게 일깨워 주고 있었다. 사람들의 상태를 미리 추측하여 결론짓고 그 결과 나까지 그 추측의 노예가 되어 개인적 살길을 찾게 되었다. 그것이 잘못된 길인줄을 알면서도 운동에 대한 이 어마어마한 관점의 차이가 방금전 계단을 향해 뛰던 한두폭의 보폭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결국 패배주의와 승리에 대한 낙관주의는 현실 투쟁에서의 사소한 선택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내가 이렇게 고립되어 동지를 바로 옆에두고 아무런 신뢰도 믿음도 없이 이렇게 화석처럼굳어있어야 하는가? 정치적 시체가 되어야 하는가?….. 이 넓은 강의실을 놔두고 한뼘도 못움직이며 몸부림쳐야 하는가, 두걸음만 더 적극적으로 뛰었다면 깨지더라도 전선에서 깨져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최루가스를 참을 수만 있었다면,이런 무서운 고독은 없었을 것이다. 그때였다. 옥상에선 ‘적들의 심장에 피의 불벼락을 내리자’라는 노래소리가 다시 울리고 싸움이 계속되는가 했더니,7층 맨끝 강의실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낮익은 여성동지의 비명소리와 구타 당하는 소리,질질 끌려 가는 장면이 눈에 선하게 그러지는 몸부림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어서 남성동지,또 이러 남성동지,다음은 여성동지가 비명을 지르다 ‘아욱’하며 거품을 물고 숨이 끊어지는 듯한 정적, 다시 비명,그 다음 강의실 창문이 깨지고 문짝이 부서지고 ‘씨+년,개++,네 에미가 이지랄 하라고 학교보내디 이 썅+아’ 앞에서는 아득히도 멀리들리던 소리가 우리 강의실에 와서 창문을 깨뜨릴 때까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앞,뒷문 문짝이 뜯어지고 잠시 이쪽 눈치를 보는듯 정적이 흐르고, 다시 잽싸게 벽 뒤에서 장갑낀 손이 나와 벽을 더듬더니 스위치를 올리자 밖의 불빛으로 어슴프레 하던 방이 갑자기 환해지니까 두더지가 빛을 보고 눈을 못뜨듯 눈이 떠지질 않았다. 잔뜩 몸을 움츠리고 튀어 들어오는 백골을 보고 여지껏 손에 쥐고 있던 쇠파이프를 얼른 바닥에 내려놓았다. 저건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듯. 벌떡 일어났다. ‘요이 ++. 엎드려 꾾어. 이++ 봐라’ 거의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오히려 작살나게 얻어 맞으면서야 사고가 유연해지기 시작했다. 끝까지 싸우며 개길 것인가,맞을 것인가. 아니 그런 생각이 들기도 전에 잡혀가지만 말아야 한다. 옥상이 무너져서 다 잡혀갈 때까진 살아남을 의무가 있다. 한사람이라도 남아서 실무력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 그 생각이 들면서 나는 왠만큼 맞다가 벌렁 누워버렸다. 실신한 시늉을 해 버린 것이다. ‘요 ++ 봐라. 쇼하네.야,야 임마.일어나봐’ 그 말투에서 내 자세에 겁을 먹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그럼 계속 이 자세다. 아니나 다를까 한놈이 이++ 쇼하고 있네 하면서 워커 발로 가슴팍을 잣밟았다. 다시 옆쿠리를 심하게 찾다. 이때는 무척 아팠다. 숨이 턱– 하고 끊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입에 거품을 물고 벌린채로 참고 견디었다. 다른 놈이 와서 머리채를 잡고 끌어올렸다. 내 몸은 낙지꾸러미 들리듯 축– 늘어졌다가 머리채를 놓았을 때 뼈없는 동물처럼 주르륵 내려앉았다. 저희도 사람이었나 보다. 겁이 덜컹났는지 눈을 뒤집어 까보고 목밑에 손을 갖다대고 맥박을 재보더니 ‘아직은 괜찮아. 놔 두고 가자’ 그놈들이 지나가고 나서 한참뒤에 다시 대규모 병력이 7층으로 투입되었다. 눈이 감기고 신발 한짝이 반쯤 벗겨진채로 천정을 보고 누운 내 모습에 자나가는 병력마다 섬찟한 느낌을 받았었는가 보다. 한중대 정도가 지난때마다 눈을 까보고 손목을 잡고 맥을 짚어보고 입을 벌려 물을 억지로 먹이기도 하고,봉걸레를 뽑아 쇼한다며 작신 두들겨 패기도 하고 해도 아무 반응이 없자 놔 두었다가 어느 놈인지 배 밑에다 뭔가 던져 놓고,머리엔 밀집모자를 씌우고 낄낄 웃어대며 지나갔다. 자나간 다음에 눈을 떠서 보니 앞에 있는 캐비넷을 뒤져다가 여자속옷을 내 주변에 흐트러놓고 하나를 내 배 밑에다가 올려놓았던 것이다. 시체처럼 누워있는 나를 보며,지나가는 병력마다 섬찟함을 느끼자, 우습꽝스럽게 만들므로써 그런 분위기를 억제시키려 했던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그 행동에 구역질이 났다. 서둘러 안보는 틈을 타 안보이는 곳에 치워 버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병력이 7층에 투입되는 시점에 매트리스 차가 나타나고,소방차가 공대건물 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단다. 옥상에 있던 동지들은 거의 절망적인 상상까지 했던것 같다. 그런데 새벽이 밝아오고 사방이 환하게 밝아지자 병력은 철수했다.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복도가 텅 빈것을 확인하고 복도중앙에 섰다. 깨진 유리창 조각,부서진 책상,짲겨진 동지들의 옷,지갑 주머니,눈물이 핑- 돌았다. 복도를 걷는 내 발걸음이 뒤뚱거리는 것을 느끼고서야 굉장히 맞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체 흉내를 내고 있던 동안 워커발과 몽둥이로 때리는 것을 견디던 생각이 떠올랐다. 동지들의 모습과 끌려가고 없는 7층 동지들을 생각하며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이 밀려와 눈물은 자꾸만 흘러 내리고 있었다.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은 밀가루를 뿌려 놓은듯 분홍색이 섞인 흰색 최루가스가 너무나 곱고 두텁게 내려 앉아 있었다. 옥상계단에 이것 저것 뜯어다 쌓은 바리케이트가 그리 튼튼하지도 않게 쌓여 있었다. 구석엔 가스냄새를 삭힐려고 불을 피워 연기로 검은 그을음을 내며 피우고 있었고,한사람은 졸고 두사람은 힘이 빠져 환담을 나누고 있다가 인기척을 듣고,’거기 누구요? 아니,00아냐’ 그중 한사람이 우리 사무국원이었다. 머리엔 흰 최루가루를 뒤집어 쓰고,얼굴엔 치약과 휴지조각이 붙어있고,시컴시컴한 그을음이 눈썹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 더 간밤 그 기나긴 싸움을 마치고 막 밀려드는 피로가 그것들 사이에 붙어 있었다. 반바지에 흰 런닝 하나만 입고 옥상 사수투쟁을 선두에서 지휘한 사람이 바로 우리 사무국원 이었음을 단번에 알수 있었다. 그만큼 치열한 흔적이 다른 어느 사람보다도 강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시체로 살아남아 있을 의미를 부여해 준 전선의 선두에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서있는 그 형을 보는 순간 마음 속에서 울컥하는 울음이 솟구치는데 그걸 다시 꿀꺽 삼켜야했다. 형이 너털웃음과 함께 던진 말 때문이었다. ‘어허 귀신이구만. 거기서 어떻게 살아남았냐?’ ‘나중에 얘기 할께요’
옥상문 앞에선 전투조가 뭔가 정리를 하고 있었다. 현재 남아있는 실무자와 잡혀간 실무자를 확인하기도 하고,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도 하고 궁리도 했다. 이때 우리 사무국의 형이 옛날 5공때의 경험을 얘기하며 ‘그땐 뭐 엠프,스피커 같은거 생각이나 했어요.마이크 하나만 잡고 집회 다 했잖아요. 지금 이 판도 그렇게 생각해 보자구요. 까짓것 공연 못하면 어때. 규탄집회 분위기로 가는거야. 그 상태에서 결의를 모으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봐요’ 투쟁을 통한 승리의 신심이 이처럼 힘있게 들릴수 있을까. 이 얘기가 나오자 ‘그렇지 우리가 언제 뭐 조명,음향 빵빵하게 해 놓고 행사했었나’ 라며 금방 허허 웃으며 낙관적 분위기로 ‘오히려 이 폐허 위에서 보란듯이 행사를 치뤄내자구요’ 하며 결의하는 분위기로 발전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