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재배치토론-정욱식 이시우 2004/07/05 194

한미동맹에 대한 소고(小考)

박건영(가톨릭대 교수)

1. 주한미군 철수는 바람직한가
- 경제적 측면 과소평가될 수 없다 (해외투자자들 심리 위축)
- 북한의 위협 해소되었는가. 특히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경우 비대칭전력이 야기하는 제 문제를 주한미군이 일정 부분 관리할 수 있을 것인가.
- 힘의 공백 발생하여 중일간 군비경쟁 발생 가능하고, 이의 위험성과 함께 남과 북이 이러한 군비경쟁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형편 고려되어야 하고, 남북의 군비경쟁 동참은 한반도 긴장을 격화시키고, 남북의 경제력 고갈시킬 개연성, 그리고 이에 따른 우발적 갈등 발생 가능성 있다.
- 북한도 2000년 6월 15일 이후 주한미군의 이익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주한미군이 북한을 위협하여 통일을 저해한다는 주장의 설득력은 감소하였다 (부시 정부의 경우 예외적인가?).
- 오히려 통일을 원활히 하기 위한 현실적 수단. 미국의 지지없는 통일 사실상 불가능.
- 통일 후 영토적 야심이 없고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미국이 중국(사회주의 권위주의 그리고 “동북아공정 프로젝트”) 일본(독도 등) 등 보다 한국에게 더 유리한 동반자일 수 있다.

2. 한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원하지 않는다면 냉전 및 9.11이후 미국의 핵심적 전략이익화된 지역분쟁 신속개입을 위한 기동군 기지 제공은 불가피한 것? 한국이 주한미군의 역할변경에 반대한다면 한미간 갈등 비화하고 한미동맹 해체될 가능성 존재.
- 따라서 향후 한미동맹은 주한미군의 원정군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 2사단 2여단의 이라크 차출은 이러한 맥락에서의 한미동맹의 변환을 시작하는 첫번째 사례가 될 것이다. 주한미군의 원정군화 또는 “지역동맹화”에 대한 미국의 집착은 이미 클린턴 대통령의 뉴욕타임즈 기고문에서 명백히 드러난 바 있다 (6.15공동선언 이후 그는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다해도 주한미군은 동북아 지역의 문제를 관리하기 위해 주둔할 것”이라 선언하였다).
- 그러나 한미동맹은 현재 한반도 억지 위주 동맹 (북한의 재침 방지, 한미의 영토가 침략받았을 때 태평양 상의 공동의 위험에 공동 대처)으로서 동맹의 성격을 전환해야 하는 바, 이것이 조약에 명문화될 경우 중국 등을 자극할 우려가 있으므로(중국은 그동안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왔고 일본과 관련한 병마개 역할의 의미를 인정해왔으나 미군의 역할이 동북아 평화유지군 등으로 바뀌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다) “전략적 모호성”을 활용하고 나아가 다양한 제한조치를 마련하여 한국이 지역분쟁 발생시 자동적으로 미군과 함께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는 일방의 판단만으로도 군사행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과 미국이 공히 인정하지 않는 전장에는 공동으로 대처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넣을 필요가 있다.

- 또한 주한미군의 기지가 한국내에 존재하여 미군의 적군의 타격대상이 될 우려가 높고, 미군의 출입이 제한받지 않을 때 한국이 미군의 적군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공격하는 군대의 증강을 돕는 것으로 이해되어 공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주한미군의 한반도 영역 밖 작전출동에 대해 통제권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제4조).
- 제4조 및 SOFA는 ‘전국토 기지공여주의’를 시행하고 있으며, 미국은 병력과 핵무기 등을 일방적으로 한국에 들여왔다 빼내갈 수 있다. 한국의 주권이 침해받는 전형적 사례. 미일안보조약 및 관련 교환각서는 “미국 군대의 일본 배치, 장비의 주요 변경, 일본 국내의 시설과 구역의 기지화는 일본 정부와 사전 협의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미군기지를 특정지역으로 한정해 “대여”하도록 했다.
- 이외에도 6조는 조약이 ‘무기한’ 유효하며, 일방의 통고 1년 뒤에 조약을 종료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10년마다 조약 개정을 논의하도록 돼 있는 미일조약) 한국의 안보상황 변화를 조약에 반영할 수 있는 조건을 제약할 뿐만 아니라 한국에 양자택일을 강요해 결과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비판 제기된다.

3. 주한미군이 기동군화 첨단화하고 북한의 위협이 줄어든 결과 숫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많은데(we will move people where we need them, Africa, ME, Caspian Sea region, Eastern Europe) 이러한 한미연합전력구조 속에서 미군이 한국군을 전시작전통제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1990년대초 ‘넌-워너 수정안’에 따른 주한미군 감축 계획에 따르면 제3단계에서 작전통제권의 완전한 이양이 이루어지게 되어있었으나 미국은 주한미군의 위상이 약화되고, 한국이 부담하는 방위비 분담금이 줄어들 것을 우려했다).
- 아울러 한국군이 주한미군이 개입하는 전장으로 배치될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서도 작전통제권의 환수와 연합방위체제의 해소는 한국에게 필수적이다. (동북아 유사시 미군의 지휘하에 한국군과 “일본군”이 합동작전을 벌일 수도 있음을 가정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의 국익인 평화적 통일 특히 북한과 중국에 주는 의미를 정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일본군”이라 함은 일본 헌법 9조가 개정될 것을 가정한 것이다. 일본인의 과반수 이상이 전쟁은 반대하지만 군대보유에 대해서는 찬성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과 같이 평시・전시 모두 각자의 군대에 대해 각자가 작전을 통제하는 병렬식 지휘체계(연합전력구조가 아닌 합동전력구조)로의 전환이 바람직하다. 한미연합사는 ‘한미전쟁기획단’ 등의 구조로 전환・조정될 수 있다.
- 유사시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 작전통제권을 미군에 이양하는 절차와 그에 필요한 연습의 제도화 필요하다.
-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CODA(연합권한위임사항)의 환수가 필요하다. 한미연합사령관은 전시 작전통제권을 효율적으로 발휘하기 위해 부여받은 CODA를 통해 한국군의 핵심적인 군사 사항에 대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연합사령관은 평상시 위기 관리 명목으로 한국군의 일상적 작전 활동을 보고받고 있으며, △정전협정 사항 △을지포커스 훈련 등 한미 연합훈련 △전시 작전계획 수립 △한미 정보관리 △지휘통신 체제 상호운용성 등에 대해 지시를 내릴 수 있다.
- 한국은 독자적 작전계획수립 능력, 정보력 증강을 위한 적극적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 주한미군의 작전지역의 변화가 이루어지고(한반도에서 동북아 및 전 세계), 주한미군이 감축되며 작전통제권 환수되면 작전계획 근본적 변환 필요.
- 미사일방어체제에 한국이 편입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미사일방어체제에 편입되면 한미일 동맹네트워크가 현실화되어 다양한 정치 군사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만일 미사일방어체제가 한국에 도입되더라도 이는 한국군에 의해 독자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지역분쟁 발생시 미사일방어협력을 할 것인지의 문제도 한미가 공동으로 내리는 상황판단에 따르게 될 것이다.
- 한국은 작전통제권을 환수하고 비대칭위협 대처능력, 정보수집분석능력 등 취약 부문 개선을 위한 R&D 투자 강화해야 한다. 단순한 무기수입으로부터 수입대체, 군사기술역량 확보 필요. (민간부문에 대한 spin-offs). 미국이 해공군력 중심으로 주한미군을 운용하고 한국에게 지상군 강화를 요구하면 북한 자극할 수 있고, 한국의 육군 비대화 해소 작업에 역행할 수 있다는 점 지적되어야 한다.

4.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르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태평양 지역에 지역안보체계가 마련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pending the development of a more comprehensive and effective system of regional security in the Pacific area)라는 조항이 있는데 이는 동북아다자간안보협력이 제도화/기구화되면 한미동맹이 완화되거나 해소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 한국은 동북아다자간안보협력을 제도화/기구화하는데 총력을 기울 필요가 있다(동북아에는 세계적 강국들이 즐비하여 power politics가 지배할 경우 희생자는 한국이 될 것이기 때문에 안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특히 다자간안보협력의 장에서 한국은 중국과 북한, 그리고 러시아의 오해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초기에는 한국과 중국 간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공동노력이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 다자간안보협력이 제도화/기구화되어도 유럽의 경우와 같이 다자간안보협력체과 한미동맹을 일정 기간 동안 공존할 수 있다(유럽에서 NATO와 OSCE 공존).
- 장기적으로는 전자가 후자의 경직성과 적대성을 완화하거나 해소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여 동북아의 안전보장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이 시점에 이르러 (특히 한반도 통일 이후) 한미동맹을 해소할 것인가 아니면 한미동맹을 정치동맹화(예를 들어, 우호협력조약)하여 남겨둘 것인가 등의 문제는 그때 안보정세 등을 고려하여 한국이 미국과 협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 한미동맹 관련 양국간 신뢰의 문제
- 주한미군의 숫자보다 능력이 그리고 그것 보다 신뢰가 중요하다(RMA).
- 신뢰 증진하기 위해서는 지난 50여년간 발생한 양국의 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한미관계, 한미동맹 필요.
한미동맹의 현대화와 한반도 군축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1. 들어가며

미국이 3만7500명의 주한미군 가운데 1만2500명을 내년 말까지 감축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하면서, 이에 대한 대처 방안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단 한미 양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병력수는 줄어들지만 전력은 크게 향상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안보공약과 억제력에는 문제가 없다며 진화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후 처음으로 한미동맹이 큰 변화에 직면하면서 ‘안보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전환기를 맞은 한미동맹’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는 크게 △자주국방 역량 조기 구축 △한미동맹 강화 △한반도 군축 추진 등 세 가지가 제시되고 있다. 일단 정책결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지도부는 협력적 자주국방을 조기에 추진해, 독자적인 대북 억제력 구축에 나설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은 “무슨 돈으로 자주국방을 하려고 하느냐”며 반발하면서 미국의 요구를 대폭 수용해서라도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비록 ‘소수의 목소리’이지만, 일부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주한미군 감축을 기회로 삼아 해묵은 과제이자 시대적인 요청한 한반도 군축을 본격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이와 비슷한 주문을 하고 있다.

일단 한국이 발상의 전환을 통해 기존의 ‘한미동맹 현대화’의 흐름을 바꿔놓지 않으면, 주한미군 ‘감축’은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북아 전체의 새로운 군비경쟁을 여는 서막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우리가 주한미군 병력의 감축이라는 하나의 현상을 뛰어넘어 보다 넓고 크게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한미군은 미국 군사력의 ‘일부’이자 미국이 한반도 정책의 하나의 요소라는 점에서, 분석의 초점이 주한미군의 감축에 맞춰지면 ‘나무는 보면서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주한미군의 변형과 협력적 자주국방을 두 축으로 하는 ‘한미동맹 현대화’가 야기할 새로운 군비경쟁과 이에 따른 안보 불확실성의 가능성을 점검하고, 이에 대한 ‘예방적 대안’으로서의 한반도 군축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2. 한미동맹 현대화는 군비경쟁을 가져올 것인가?

(1) 주한미군의 변형과 협력적 자주국방의 몸통은 ‘동맹의 현대화’

분석의 정확성과 예측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논란이 되고 있는 몇 가지 개념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먼저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재배치’는 주한미군의 ‘변형’ 가운데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근거 없이 안보공백론이 거론되고 있는 것도 주한미군의 ‘변형’을 ‘감축’이나 ‘재배치’로 동일시하는 데에서 나오는 오류이다. 이는 2004년 3월 31일 레온 라포테 주한미군 사령관의 미국 상원 증언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라포테는 이 증언에서 ‘주한미군의 변형(transformation of USFK)’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주한미군의 재편 방향으로 세 가지를 설명했다. 첫째는 장비 현대화와 새로운 작전 개념 실행을 통해 전투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3년간에 걸쳐 110억달러를 투입해 해공군력과 정보력, 그리고 미사일방어체제(MD) 등을 중심으로 주한미군의 군사력을 대폭 강화하고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에 대북한 선제공격 작전을 포함시킨 것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둘째로 전력 구조를 최적화하기 위해 주한미군의 역할과 임무를 재정의한다는 것인데, 이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해외 차출을 비롯한 ‘지역적 역할’ 강화가 핵심이다. 끝으로 지속적인 주둔을 위해 기지와 병력을 재배치한다는 것인데, 용산기지와 2사단의 후방 배치 및 일부 병력의 감축이 여기에 해당된다.

다음으로 노무현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협력적 자주국방’은 한미동맹과 분리되거나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주한미군의 변형과 함께 새로운 한미동맹을 형성하는 두 축이라는 것이다. 이는 2003년 5월 14일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기술력을 활용하여 양국 군을 변혁시키고 새로이 대두하고 있는 위협에 대한 대처 능력을 제고함으로써 한미동맹을 현대화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러한 총론 수준의 합의를 바탕으로 미국은 주한미군의 변형을 추진하고 한국은 연합방위체제에서 한국군의 역할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공동성명에서 “대한민국의 국력 신장에 따라 한반도 방위에서 한국군의 역할을 계속 증대하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데 대해서도 유의하였다”는 내용이 담긴 것은 이후 노무현 정부의 ‘협력적 자주국방’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점은 주한미군의 변형이 한국군의 구조개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주한미군의 지상군 감축을 한국군이 메워야 한다는 논리는 기형적인 한국군의 구조를 고착화시킬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지적해온 것처럼, 육군의 감축과 해공군력의 강화를 통한 육・해・공군의 균형 발전 및 정보 전력의 강화는 한국군 현대화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이러한 한국군의 현대화 방향은 지상군은 줄이고 해공군력 및 정보력은 강화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주한미군 재편과 충돌하게 된다. 특히 주한미군의 병력수가 감축되면 한국군의 병력수를 감축하기도 어려워질 공산도 커져 ‘작지만 강한 군대’를 육성하기도 쉽지 않게 될 것이다.

한국의 향후 국방정책과 관련해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주한미군이 다른 지역으로 출동했을 경우 ‘차출된 주한미군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즉, 감축 계획에 따라 주한미군이 2만5000명으로 줄어들더라도 이들 병력은 미국의 필요에 따라 다른 지역에 투입하겠다는 것이 주한미군 재배치의 목적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미군 공백에 대비해서 자체적인 ‘예비 군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럴 경우 한국은 ‘감축된’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재배치가 끝난 이후 ‘차출될 수도 있는’ 주한미군까지 대비한 국방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한미동맹의 현대화는 한국의 국방정책과 관련해서도 대단히 복잡한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협력적 자주국방’ 노선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으면, 군비 부담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도 대미 종속성은 거의 변화없이 유지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중심 국가 구상에 커다란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2) 주한미군의 변형과 미국의 신군사전략

주한미군 감축 일정과 그 대상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한미군의 미래나 미국의 한반도 군사전략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앞으로 대북한 방어 작전에서 지상 방어 작전은 주로 남한에게 넘기고 미국은 정밀타격 능력과 정보력, 그리고 미사일방어(MD) 작전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병력수는 줄이는 대신, 한반도 안팎의 해공군력과 미사일 방어 능력, 그리고 정보력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110억달러를 투입해 증강하겠다는 전력이 주로 C4I와 JDAM 등 정밀폭탄, 그리고 MD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둘째, 주한미군의 규모는 줄이는 반면에, 태평양 사령부를 주축으로 주한미군이외의 미국 군사력의 증원 능력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주한미군에 사전배치 개념을 적용해 장비와 무기는 한국에 잔류시키면서 유사시 병력을 투입하는 방향으로 주한미군의 구조를 바꾸고, 해병대와 스트라이커 부대를 주축으로 한반도 신속배치 능력을 강화하는 것을 추진해오고 있다.

셋째, 주한미군이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도 작전을 펼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주한미군을 기동타격대화시켜 미국이 원하는 지역에 투입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한국을 ‘중간기지화’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렇듯 주한미군을 비롯한 미국 군사력의 변화는 미국의 군사전략이 크게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의 내용으로는, 첫째 미국이 21세기의 새로운 전쟁으로 규정한 ‘테러와의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둘째 대량살상무기 위협 제거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채택한 선제공격 전략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군사적 능력을 갖추며, 셋째 중국이 미국과 대등해지는 것을 사전에 좌절시키겠다는 ‘수위(primacy)’ 전략을 담고 있다.

(3) 북한, 군사적 대응에 나설 것인가?

물론 이와 같은 미국의 신군사전략과 이에 따른 한미동맹의 현대화가 한반도에서 새로운 군비경쟁을 야기할 것이라고 단정하기가 이르다. 이를 둘러싼 변수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주요 변수로는 미국의 대선 결과와 이에 따른 차기 미국 정부의 주한미군 정책의 변화 가능성, 용산기지와 2사단 이전 협상 결과, 북핵 문제의 전개 추이, 장성급 회담 등 남북한 군사관계, 협력적 자주국방의 추이 등이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추세와 한미 양국 정부의 향후 계획, 그리고 변수들의 성격을 볼 때,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한반도가 새로운 군비경쟁으로 휘말릴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미국 대선에서 존 케리가 승리를 하면 여러 가지 변화는 있겠지만, 군사력의 변형은 초당적인 정책이라는 점에서 주한미군의 재편은 큰 변화없이 예정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북핵 문제의 해결 가능성도 미지수일 뿐만 아니라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더라도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부가 대폭적인 국방비의 증액과 첨단무기 도입을 통한 군비증강 노선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도 군비경쟁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미국의 신군사전략과 군비증강에 기초한 ‘한미동맹의 현대화’는 북한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의 갖고 있는 대미 억제력인 장사정포와 미사일 전력이 주한미군의 감축 및 후방 이동, 그리고 미국의 정밀타격과 MD 능력 강화로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적어도 군사안보 차원에서 북한으로 하여금 새로운 억제력을 추구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북한이 첨단 무기를 도입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없고,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그리고 이들 무기의 운반수단으로써의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경우 체제생존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대미・대일・대남 관계 개선이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고립과 미국의 선제공격 위협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북한의 딜레마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주한미군의 재편을 비롯한 GPR이 자신에 대한 선제공격의 예비 수순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적대관계에 있는 미국・일본・남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동시에 냉전 시대의 동맹국이었던 중국・러시아와의 안보 협력도 적극 추진해나갈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생존 전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상대국인 미국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관계 개선에 나설지를 확신할 수 없을 뿐더러,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향상될 것이기 때문에 북한 나름대로 ‘군사적 자구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이는 북한의 군사적 선택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전력을 ‘은밀히’ 개발・증강시키는 것이다. 두 가지 무기 프로그램의 개발 능력에 있어서 북한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고, 구체적인 내용 역시 베일에 가려져 있어 외부에서 탐지하기가 쉽지 않아, 대미 억제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선제공격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미사일을 확보하기 위해 미사일의 수를 늘리면서 이동식 발사대와 지하 시설 건설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사일의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 핵무기 및 화학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탄두 개발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북한은 이를 통해 미국과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한편, 협상 실패에 대비한 군사적 억제력의 확보도 동시에 고려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북한은 대미 억제력 확보 차원에서 이른바 ‘비대칭 전력’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동시에 북한 나름대로 ‘재래식 군사력 구조 재편’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의 군사력 구조로는 한미동맹의 현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상할 수 있는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의 재편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장사정포를 비롯한 전방 배치 군사력을 현상 유지하거나 감축하면서 다른 분야에 투입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주한미군의 재편에 따라 전방 배치 군사력의 대미 억제 효과가 반감되고, 대규모의 병력과 장비・무기를 유지하는 것이 막대한 경제적 부담과 함께 다른 분야의 군사적 투입을 제약한다는 논리를 기초로 한 전망이다.

둘째, 북한이 한미동맹에 비해 절대적인 열세에 있는 해군력과 공군력과 방공망 강화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다. 이는 대북한 공격에 동원될 미국의 군사력이 주로 해공군력이고, 해병대와 스트라이커 부대 등을 이용한 신속 배치 전략으로 바뀌는 것에 대한 대응책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구체적으로는 신형 전투기의 도입, 한미연합군의 북한 해안으로의 접근 및 상륙 작전에 대비한 해안포와 스틱스 미사일 전력 강화 및 기뢰전 능력의 배가, 노후한 방공망의 정비 및 신형 방공 미사일의 도입 등을 예상할 수 있다.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2001년을 전후해 ‘외상으로’ 신형 방공 미사일, SU-27 및 미그-29 전투기, 무인 프첼라(PCHELA)-1 정찰기 등의 도입을 시도했던 것은 북한이 노후한 공군력과 방공망 개선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예상한 것처럼, 북한이 주한미군 재편에 따른 새로운 위협에 대해 군사적인 대응책을 강구하고 나올 경우, 한반도의 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은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미사일 전력을 강화시키면 이는 한-미-일 MD 협력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고, 이는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까지 긴장시킬 것이다. 또한 재래식 군사력을 현대화시키는 조짐을 보일 경우, 대북지원과 경제협력, 그리고 남북한 군사회담도 큰 도전을 맞게 될 것이다.

3. 한반도 군축 환경 평가와 군축 방안

(1) 한반도의 군축 환경

냉철하게 평가할 때, 필요성과 당위성에 비해 한반도 군축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은 열악한 편이다. 우선 한반도 군사문제에 있어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이 주한미군의 병력수를 감축하면서도 한반도 안팎의 군사력을 증강시키면서 선제공격 전략과 수위전략을 채택하고 있어 새로운 군사적 불확실성을 잉태시키고 있다. 또한 노무현 정부 역시 군축에 대단히 미온적일 뿐만 아니라,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수사를 앞세워 대규모의 군비증강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에도 미국으로부터의 위협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미동맹의 현대화’라는 새로운 변수를 만나고 있고, ‘선군정치’를 표방하면서 체제의 보루로서의 군부의 역할을 확대해왔기 때문에, 군축을 추진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군축 환경이 그렇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선 주한미군의 변형과 관련해 병력수의 3분의 1을 감축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군축 협상의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주한미군의 추가적인 전력 증강이 억제되고 북미관계의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들’이 붙는다.

대규모의 국방비 증액과 첨단무기도입에 기반을 둔 노무현 정부의 협력적 자주국방도 여러 가지 제약 요인이 있다. 우선 민생과 경제가 어렵고 정부 재정이 크게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방비를 대폭 증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국방비를 증액할 것이 아니라 군구조 개혁을 단행해 국방비 지출을 효율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반도 군축 환경과 그 조건을 평가할 때, 가장 주목할 만한 긍정적 요소는 남북관계와 북한의 변화를 들 수 있다. 5월과 6월 각각 금강산과 설악산에서 열린 두 차례의 남북 장성급 회담을 통해 남북한은 서해상의 무력 충돌 방지와 상호간의 비방 및 선전 수단의 제거에 합의했고, 실행에 들어갔다. 이는 그동안 한반도 대결 구조의 핵심에 있으면서도 지체되어왔던 남북한의 군사안보 문제 해결의 중요한 초석을 놓은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북한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 ‘근본문제’라고 일컬어져왔던 주한미군과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군축 문제에 있어서 북한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북한의 변화를 가속화시키면서 군축과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한반도의 대전환을 꾀할 수 있는 근거들이 될 수 있다. 흔히 ‘정치외교를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일컫는 것도 이러한 기회를 살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는가?

먼저 주한미군의 주둔 문제와 관련해 북한은 1990년대 초부터 주한미군의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자 역할을 한다면 장기 주둔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피력해왔다. 이러한 입장은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해 9월 북한의 조명록 차수의 워싱턴 방문, 그리고 핵파문을 몰고 온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의 평양 방문 때도 확인되었다. 즉, 북한은 미국과의 적대 관계가 종식되는 맥락에서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입장이 정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해서도 기존의 입장을 바꿔, 남한도 협정체결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한성렬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 대사는 미국의 최대 일간지 유에스에이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모든 나라”가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으면, 북한은 핵무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모든 나라”는 남북한과 미국이라는 점에서, 이는 북한이 기존의 북미평화협정 체결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남-북-미 3자 평화협정, 혹은 남-북, 북-미 평화협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북한의 유연한 입장은 그동안 남북한 사이의 평화협정 체결 주체를 둘러싼 ‘근본적인 입장 차이’를 완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 남한은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지지・보장하는 ‘2+2 평화협정’을 공식적인 방안으로 제시해왔다.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 대상에 남한이 포함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성렬 대사의 언급은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2000년 10월 12일 클린턴 행정부와 합의・발표한 북미 공동코뮤니케에서 “쌍방(북미)은 한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1953년의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한국전쟁을 공식 종식시키는데서 4자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들이 있다”는 데에 합의한 바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후반 7차례 열렸던 4자회담에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했었다.

군축 문제와 관련해서도 북한이 직간접적으로 군축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군사력을 밀집시킨 개성 일대를 특구로 지정해 ‘공단화’하면서 군사력을 후방으로 이동시킨 것이나 남한과의 장성급 회담을 수용한 것은 군사문제에 대한 북한의 변화된 시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이 이미 병력 감축에 돌입했다는 관측과 핵 억제력을 언급하면서 “그 누구를 위협 공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망적으로 재래식무기를 축소하며 인적자원과 자금을 경제건설과 인민생활에 돌리려는 데 있다”고 주장한 것은 군축문제에 있어서도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유력한 근거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최근 북한의 경제개혁의 성격과 내용을 볼 때 북한이 병력수를 감축해 노동력을 확보해야할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군사적 유용성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100만명 안팎에 달하는 대규모의 병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경제회생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제약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1990년 초반부터 심각해지기 시작한 식량난으로 인해 대량 아사와 탈북, 그리고 영양실조로 인해, 향후 북한이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이 처한 이러한 환경과 조건들은 북한으로 하여금 병력을 감축해 군비 부담을 줄이고 노동력을 확보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들을 종합해볼 때, 군축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과 어렵게 하는 요인이 혼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축에 대한 최고지도자들의 의지와 이를 견인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변수들은 아직 현실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잠재되어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모양새를 띠게 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2) 한반도 군축의 의의와 추진 방향

우리가 최대 현안인 핵문제를 비롯해 남-북-미 사이의 여러 가지 문제를 슬기롭게 풀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및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탈냉전시대에 걸맞은 군축 모델을 개발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한반도의 적대적 군사관계 청산 및 평화체제 구축 등 거시적인 의의뿐만 아니라, 북한의 인도주의적 위기 및 남한의 인권 및 사회복지 문제, 그리고 대규모 주한미군 주둔에 따른 민간인 피해 문제와도 맞물린 것이라는 점에서, 국가안보와 인간안보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즉, 대단히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군축’이야 말로 평화를 앞당기고 자주성을 높일 수 있는 핵심 과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하에 한국 정부가 추진해야할 ‘군축의 기본 방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김대중 정부의 ‘경제와 평화의 교환 전략’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대북정책의 핵심적인 두 가지 목표인 군사적 대결 상태 종식과 민족경제공동체 건설이 선순환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남북한 상호 군축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남북관계에 있어서 ‘유연성’을 전제로 한 ‘경제와 평화의 병행 전략’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특히 최근 북한의 경제개혁의 성격과 내용을 볼 때 북한이 병력수를 감축해 노동력을 확보해야할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에, 남한으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기회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과도한 병력과 군수산업을 경제재건 목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경제 지원 및 협력을 강화하는 것과 함께, 북한의 일방적인 위협 감소와 군축이 아닌 남북한이 상호간의 군축을 추진한다는 기본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둘째, ‘선(先) 신뢰구축, 후(後) 군비축소’라는 경직된 군비통제 원칙에서 벗어나 사안에 따라 유연한 접근 방식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 신뢰구축이란 대단히 모호한 개념일 뿐더러, 이미 적지 않은 신뢰가 구축된 단계에 진입한 만큼, ‘신뢰구축과 군축의 동시 진행’, 혹은 ‘선 군축, 후 신뢰 증진’ 등 다양하고 유연한 접근을 시도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북한 모두에게 그 필요성이 절박해지고 있는 병력 감축의 경우, 남북한 합의, 혹은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병력을 먼저 ‘감축’함으로써 다른 군사문제 해결의 중요한 신뢰를 마련할 수 있다. 남북한의 병력 감축은 가장 상징적이면서도 실질적인 군축을 달성했다는 의의를 갖는 동시에, 남북한 모두 인권 신장의 획기적인 성과를 낳게 될 수 있다.

셋째, 축소지향적인 군비통제를 통해, 지금까지 분단과 적대적 대결로 인해 억압・유보되어왔던 인간적 가치 실현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한이 군축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양적인 축소나 남북관계 발전이라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군사비 축소를 통한 사회복지 예산의 증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인정 및 군복무기간 단축을 통한 인권 증진, 남성 중심의 군사주의 문화에서 피해를 당해온 여성 권익의 확대, 사병 복지 향상 등 적극적인 인권의 신장과도 맞물린 문제이다. 따라서 정부는 ‘국가안보’와 ‘인간안보’의 균형발전이라는 대전제하에, 군축을 통한 남북한 주민들의 복리 증진이라는 ‘적극적 평화’의 실현에도 주력해야 할 것이다.

넷째, 군축 협상의 ‘당사자’ 문제와 미국의 참가 문제가 중요한데, 이 문제는 가능성을 열어놓되 우선 남북한 중심 구도로 군축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나라가 남-북-미 3자인만큼 이들 세 나라가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미국이 군축 협상에 임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따라서 미국 대선 전에 남북한이 주한미군 병력수의 감축을 고려해 초보적인 수준의 군축 협상을 진행하면서,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군축 협상에 미국을 포함시킬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자국의 군사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북한과의 군축 협상에 임할 가능성은 낮은 반면에, 북한과의 포괄 협상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존 케리가 집권할 경우 미국도 참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군축 협상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남북한이 군축 협상에 돌입하면 주한미군을 비롯한 한반도를 작전 반경에 두고 있는 미국 군사력도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군축 대상과 관련해 병력과 재래식 무기로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핵・생화학무기・탄도미사일 등 이른바 ‘대량살상무기’를 포함할 것인지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 문제는 주로 북미간의 문제라는 점에서, 남북한 중심의 군축 협상에서는 이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한 중심의 군축 협상에서는 병력과 유엔이 지정한 5대 공격용 무기(전차, 장갑차, 야포, 전투기, 공격용 헬기)를 중심으로 다뤄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3) 3개년 한반도 군축 계획(2005-7년)

구체적인 방식으로 우선 1단계로 2005년부터 2007년까지의 3개년 군축 계획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 노무현 대통령의 잔여 임기가 약 3년 반이 남아 있고, 둘째 이러한 계획을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과 연동시킬 수 있으며, 셋째 이 기간동안의 1단계 군축을 통해 상호간이 보유한 억제력을 크게 약화시키지 않으면서도 평화체제 구축의 획기적인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축 협상은 2005년부터 실질적인 군축에 들어갈 수 있도록 가능한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3개년 군축 계획은 남-북-미 3자의 병력수와 공격용 무기를 현재의 3분의 2 수준으로 감축하는 것을 핵심적인 골자로 한다.

먼저 병력 감축과 관련해, 북한의 병력수는 현재 110만명에서 70-80만명으로, 남한은 69만명에서 45만명 안팎으로, 주한미군은 3만7천명에서 2만5천명 수준으로 감군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병력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북한의 경우에는 추가적인 감군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병력 감축 문제는 상대적으로 용이하면서도 가장 상징적인 군축 분야라는 점에서 시급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의 주한미군 병력의 3분의 1 감축을 기정사실화하고 있고, 북한이 대규모의 병력을 유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며, 남한 역시 군 현대화와 군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병력 감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제안은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병력 감축은 남한 내부의 문제가 더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병력 감축시 육군에 집중될 것이기 때문에 육군 수뇌부의 저항이 있을 수 있고, 병력 감축이 실업난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력 감축을 추진하기에 앞서 제대 군인의 취업 대책을 적절하게 강구하고, 대체복무제 도입을 통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비롯한 입영 대상자의 일부를 사회복지 분야에 투입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병력 감축을 통해 실질적인 국방비의 절감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도하게 비대한 장성급과 영관급 장교의 수를 줄이는 것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북한이 병력 감축을 원활하게 추진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도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지원책에는 휴전선 인근에 직업훈련센터를 건설해 감축된 북한 군인을 재교육시키는 것과 직업훈련을 마친 북한 군인을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사업에 우선적으로 고용하는 것 등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의 붕괴된 농업 기반과 사회간접자본을 본격적으로 복구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인력이 필요한 만큼, 감축된 북한 군인을 이와 같은 농업 및 건설 현장에 투입하는 남북한이 함께 방안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무기체계의 감축은 원칙적으로 병력 감축과 연계해 3분의 1을 줄이는 것으로 하되, 융통성이 필요한 군축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융통성이 필요한 이유로는, 첫째 주한미군의 경우 병력은 감축하는 대신 새로운 첨단 무기 체계들을 배치하고 있고, 둘째 남북한의 무기체계를 단순 비교하기 힘들며, 셋째 장비와 무기 감축의 전제가 되어야 할 군사력의 비교평가가 쉽지 않으며, 넷째 감축의 기준을 ‘비율’로 정할 것인지 ‘숫자’로 정할 것인지도 논란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북한의 군사력을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는 분석방식을 찾아야 한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남한의 국방부가 오랫동안 사용한 단순개수비교, 화력과 기동력을 곱한 전력지수 및 여기에 정보력을 곱한 란체스터법칙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 방식은 무기체계의 질적 요소는 물론이고 훈련 및 운영유지 상태 등 전투수행능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간과하고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이에 따라 남북한의 군사력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다른 분석 방식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분석과학협회가 개발하고 펜타곤의 ‘순(純)평가국’(Office of Net Assesment)에서 군사력 평가 방법으로 사용한 ‘TASCFORM’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기법에 따르면 현대 서구의 무기체계는 구소련의 무기체계에 비해 일반적으로 2-4배 가량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방법 역시 무기체계의 운영유지 및 보수와 군대의 사기 및 훈련 상태는 고려하지 않았지만, 1991년 걸프전 직후에 개발된 최신 분석기법이라는 점에서 다른 방식에 비해 우월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비교 기준을 미국과 구소련의 무기에 맞추고 있고 주한미군과 남한은 미국의 무기체계에, 북한은 구소련의 무기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상호간의 군사력을 비교하기가 용이하다고 할 수 있다.

TASCFORM에 따라 남북한의 주요 무기체계의 전력을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전차 전력 비교 : TASCFORM에서는 미국제 M-1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에 따르면 북한이 약 800대를 보유하고 있는 T-62는 M-1의 50%의 성능을 갖고 있고, 나머지 T-54/55는 약 33%의 성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북한 전차 전력은 M-1 기준으로 약 1300대에 해당한다. 반면 남한이 약 1천대를 보유한 K-1 전차는 M-1의 75%, 나머지 구형 전차인 M-47/48은 35%의 성능을 갖고 있어, 남한의 전체 전차 전력은 M-1 1205대에 해당한다. 그러나 북한의 전차 전력에는 (-)가 존재하는 반면에, 남한의 전차 전력은 (+) 요인이 있다. M-1가 비교 대상이 되는 T-62는 신형이고 운영유지가 잘 된 기종을 기준으로 삼고 있고, 북한 전차의 노후화를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남한의 주력 전차인 K-1은 산악지형이 많은 것을 감안해 가볍게 제조되었기 때문이 실제 전투력은 M-1의 75%를 상회할 뿐만 아니라, K-1 전차의 최신형인 K1-A1은 산악지형에서 M-1의 성능보다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전차 전력을 제외하더라도 남북한의 전차 전력은 대동소이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장갑차 전력 : 북한은 약 2,500대의 장갑차를 보유하고 있지만, 매우 노후화된 기종이어서 전체 장갑차 전력은 미국 브래들리 장갑차의 약 6-700대 수준이다. 반면 남한이 보유한 2,500대의 장갑차는 브래들리 장갑차 전력으로 환산하면 약 1,700대 수준에 해당한다. 따라서 주한미군을 제외하더라도 남한의 장갑차 전력은 북한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야포 전력 : TASCFORM에 따르더라도 남북한의 야포 전력을 비교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다른 무기체계와는 달리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고 야포의 종류 역시 로켓과 다연장포, 방사포 등 다양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약 1만2천문의 야포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약 500문의 장사정포는 서울을 사정거리 안에 두고 있다. 반면에 남한은 약 6천문의 야포를 보유하고 있고, 이 가운데에는 평양은 물론 신의주까지 날아갈 수 있는 ‘에이태킴스(ATACMS) 블록1A’도 있다. 개량화하기는 어렵지만, 북한은 남한보다 야포 전력에 우위에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전투기 : F-16 전투기를 기준으로 삼으로 때, 북한이 보유한 605대의 전투기는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F-16 150대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여기에 북한 전투기의 대단히 취약한 운영유지 상태와 연간 10-20시간에 불과한 비행 훈련 시간을 고려하면 실제 전투력은 훨씬 떨어질 것이다. 이에 반해 남한은 F-16 전투기만도 153대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F-5와 F-4 등을 포함시키면 남한의 전투기 전력은 F-16 전투기의 약 250대의 능력에 해당한다. 굳이 전쟁수행능력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비행훈련 시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현존 전투기 전력만으로도 북한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격용 헬기의 경우에는 남한이 AH-1F와 Hughes 등 약 120기를 보유한 반면에 북한은 없다. 또한 현대전에서 그 중요성이 절대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정보력은 북한은 사실상 ‘장님’ 수준인 반면에 남한은 미국의 정보력을 제외하더라도 꾸준히 증강되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해군력에 있어서도 북한의 해군력은 양적 비대함에도 불구하고 무기체계의 전반적인 노후화와 지형학적 불리함, 그리고 교육훈련의 부실함으로 남한 해군에 크게 뒤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북한은 탄도미사일과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를 일정 부분 만회하고 있지만, 이러한 전력이 실제 전쟁의 전세에 큰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고 보여진다. 물론 북한이 핵무기, 특히 핵탄두를 보유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지만, 이는 아직 불확실한 문제이기 때문에, 북한의 핵전력까지 군사력 비교에 포함시키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군사력 평가에 기초해, 앞에서 언급한 주요 무기체계를 3분의 1을 감축하게 되면 TASCFORM에 따른 군사력의 변화는 아래의 표와 같다. 표의 내용 가운데 화력이 무기 감축과 다른 비율로 조정되는 이유는 남북한이 노후한 무기를 중심으로 감축한다는 가정하에 계산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산에 따르면, 남한은 북한과 같은 비율로 무기를 감축하면 야포 전력을 제외하고 다른 무기체계의 상대적인 전력은 더 강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남한의 무기체계가 북한보다 현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항목
수적 비교
TASCFORM에 따른 화력 비교

남한
북한
남한
북한
전차
2,300→1,600대
3,500→2,400대
1,205→960 M1
1,300→937 M1
장갑차
2,500→1,700대
2,500→1,700대
1,700→1,300 브래들리
650→450 브래들리
야포
6,000→4,000문
12,000→8000문
열세
우위 유지
전투기
570→380기
600→400기
250→200 F-16
150→100 F-16

<남북한 군사력 비교표>
※ 수치는 The Military Balance 2003-2004와 국방백서(2000) 참조. 계산은 Michael O’Hanlon과 Mike Mochizuki의 Crisis on the Korean Peninsula : How to Deal With a Nuclear North Korea(Washington : McGraw-Hill, 2003)에서 남북한과 주한미군의 군사력을 TASCFORM으로 비교평가한 것을 참고해 재구성한 것임.

군축 문제와 관련해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양측의 무기 현대화 계획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군축 협상시 가장 큰 난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경우에는 압도적인 경제적 우위를 바탕으로 최첨단 무기체계의 개발・생산・도입을 할 수 있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한이 군 현대화 계획을 전면 중단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이 문제는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공격용 무기 도입은 자제하면서 필수불가결한 무기체계가 추가적으로 배치되면 그 수만큼 기존의 무기를 감축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남북한 사이의 타협을 이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군축 협상과 함께 남-북-미 평화협정 체결 협상을 병행함으로써, 남한의 군 현대화 사업이 한반도 평화체제 및 통일 시대에 대비한 것이라는 점을 북한에 설득할 수 있는 정치적 환경 조성이 긴요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