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재배치토론회자료집 이시우 2004/08/18 231

한미동맹 전환과 주한미군 재배치,
어떻게 볼 것인가?
토 론 회

일 시 ○ 2004년 6월 17일(목) 오후 2시~5시
장 소 ○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11층)
주 최 ○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 평화만들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회

‘한미동맹 전환과 주한미군 재배치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 순서

□ 발제 1 주한미군에 대한 근본적 재평가
–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중심으로 -
(강정구/동국대 교수)

□ 발제 2 한미동맹 전환과 미군 재배치에 대한 비판과
실천적 대안 모색
(박기학/평통사 정책실장)

□ 토론 이철기(동국대 교수)
정성재(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 변호사)
강태호(한겨레신문 기자)

□ 사회 김승국(평화만들기, 박사)

자료집 목차

□ 발제문1 ․ 주한미군에 대한 근본적 재평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중심으로 ․ 강정구 ․ 3쪽
□ 발제문2 ․ 한미동맹 전환과 미군 재배치에 대한 비판과 실천적 대안 모색 ․ 박기학 ․ 42쪽
□ 토론문1 ․ 안보 패러다임을 바꾸자 ․ 이철기 ․ 59쪽
□ 토론문2 ․ 강태호 ․ 64쪽
□ 토론문3 ․ 정성재 ․ 71쪽
□ 발제 1

주한미군에 대한 근본적 재평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중심으로

강정구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unikorea@cvnet.co.kr)

1. 머리말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한지 거의 60년이 되었다. 공식적인 군사동맹관계인 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진지도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이 주한미군을 발판으로 삼아 미국이라는 외세는 우리 현대사의 결정적인 굽이굽이마다 개입해 핵심적인 지배자로 군림해 왔다. 이러한 미국의 내정개입은 1945년 8월 해방이 되자말자 조선사람 어느 누구와도 상의 한 번 없이 자기들 멋대로 한반도를 38도선에서 양쪽으로 두 동강을 내는 지리적 분단에서 시작되었다(강정구, 2002a).
최근 외교부 북미국의 항명파동, 보은론(報恩論)에 따른 한국군 이라크전쟁 파병 강행, 한나라당 중심의 16대 국회의원 147명의 주한미군 이전반대 결의안, 3․1절과 8․15까지 미국 성조기를 들고 나와 마치 조선조 말 일진회가 ‘친일만이 살길이다’라면서 일장기를 갖고 외치듯 벌어지는 ‘반핵 반김정일 숭미 숭부시’ 시위의 자발적 노예주의성, 주한미군 1개 여단의 이라크차출과 병력 12,500명의 2005년 말까지 철군에 따른 ‘안보불안론’ 등 미국과 주한미군 문제는 언제나 한국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다.
이러한 성격의 주한미군이 최근에는 용산기지를 폐쇄하고 앞으로 최소한 50년 이상 머무를 미군기지를 평택에 건립한다고 미 국방고위당국자는 밝히고 있다(<한겨레> 030319). 이렇게 되면 최소한 110년 이상 이 땅에 외국군인 미군이 주둔하게 된다. 우리 역사상 최장기 외국군 주둔의 기록은 일본제국주의 군대로 그 기간은 41년이었다. 그러나 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이미 이 최장 기록보다 1.5배 가까이 되었다. 이러한데도 미국은 2004년 2월 서울에서 열린 제7차 미래동맹정책구상회의 때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계획(GPR-Global Posture Review)’에 따라 한반도를 ‘전력투사중추기지(Power Projection Hub)’와 ‘주요작전기지(MOB- Main Operating Base)’의 중간급 기지나 주요작전기지로 삼아(<연합뉴스>, 040519) 다시 최소한 50년, 잘못하면 영구히 미군을 더 주둔시키겠다고 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 2차회담에서 미군을 동아시아 지역안정에 기여하는 방법으로 재조정하는, 곧 동아시아 지역군으로 재편하는 역할분담이 합의되었다. 이 역할 재조정은 2030~40년경에 도래하게 될 미국과 중국간의 동북아신냉전 등에 대비하는 등 미국의 동북아패권 또는 세계패권과 연동되어 있음은 뻔한 일이다. 미국은 또한 110억 달러를 투입하여 주한미군을 첨단화하고 전력증강을 꾀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국방비를 높여 군사력을 증강시키라고 내정개입을 자행하고 있다. 이에 발을 맞춘 듯 국방부는 무려 GNP의 3.5%수준까지 올리겠다고 하고 참여정부는 자주국방이란 명목으로 수십 조원의 천문학적인 군사비를 투입하여 한국군을 첨단화할 계획이다.
이러한 주한미군의 재편, 재배치, 군사력 증강, 신속기동군 재편에 따른 일부 병력 철수 등은 미국의 21세기 세계 및 동북아 지배 전략의 청사진과 이를 위한 신군사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이 필요할 정도로 주한미군이 전면 재편되고 재배치되는 과정에서 한국군 역시 연동되어 협력적 자주국방이란 명분으로 통합 및 조정된다.
이는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당사국 중 어느 1국이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고립하여 있다는 환각을 어떠한 잠재적 침략자도 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정한 한반도 범주를 뛰어 넘어 동북아 및 세계로까지 확대되는 근본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곧 미래한미동맹은 그야말로 새로운 신한미군사동맹을 꾀하고 있다. 이 신한미군사동맹이 계획대로 이행되면 한반도의 장기적 역사행로가 과거 60년 가까이 현존의 한미동맹에 의해 기본적으로 틀 지워졌듯이 앞으로 최소한 반세기 이상은 또 다시 이에 의해 더욱 더 구조적으로 제약 및 강제될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민족의 자주권과 주권국가로서의 주권이 원천적으로 침해당하고 평화와 통일은 심각하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
우리는 지금 세계사적으로는 탈냉전을, 또 민족사적으로는 통일시대를 맞고 있다. 이 시대적 전환에 걸맞는 우리의 장기적 역사과제는 냉전체제에서 비롯된 전쟁위협을 극복하고 분단체제를 청산하여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곧 평화와 통일의 터전을 닦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사적 과제는 응당 주한미군과 신한미군사동맹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민족사의 도정에서 디딤돌이 될지 아니면 걸림돌이 될지를 근본적으로 또 성찰적으로 분석 및 평가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에는 이제까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문제제기 자체도 금기시 되어 왔던 주한미군 불가피론, 한미공조제일주의 등의 영역이 의문시 될 수 있고 또 쟁점화 되어야 한다. 물론 논의와 쟁점의 반열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어 왔던 냉전성역인 주한미군 철수, 반미운동, 미국 전쟁 위협론, 한미군사동맹 철폐, 한미공조보다 민족공조우선주의, 연방제 통일 등의 분야까지 주창될 수 있고 또 논쟁이 이뤄져야 한다. 곧 평화와 통일 및 민족자주에 관련된 모든 영역이 논쟁이 되는 ‘비 쟁점의 쟁점화(issue of non-issue)’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주한미군 1개 여단의 이라크 차출을 계기로 촉발된 주한미군에 대한 무성한 논의는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근본적인 접근이나 쟁점화를 외면하고 있다. 조․중․동 등 주류신문을 비롯해 맹목적 숭미주의에 길들여진 우리 사회의 기존 주류들은 촛불시위나 반미운동, 노무현정부의 동맹관계 ‘훼손’ 등 미시적 수준의 요인을 탓하고 있고 반세기동안 우려먹은 ‘안보불안’, ‘동맹균열’ 등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2004년 5월 28일 연세대에서 열린 국무총리실 주한미군대책기획단 주최 ‘주한미군 문제 전문가 Workshop’에서 필자는 이제까지 기획단 논의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등과 같은 근본적 문제제기나 논의가 단 한번이라도 있었느냐는 질문에 차관급의 기획단단장은 두 번의 끈질긴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즉답을 회피하였다. 이는 특별기획단 조차도 이런 근본적인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이들은 여전히 ‘혈맹’같은 한미공조를 변수(variable)가 아닌 상수(constant)로 또 쟁점의 대상이 아닌 전제로 삼고 있다. 이래서는 주한미군과 신한미군사동맹 등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사적 과제에 걸림돌인지 디딤돌인지 제대로 판명될 수 없다. 물론 성찰적이고 근본적인 재평가도 어림없다.
필자는 탈냉전과 통일시대인 오늘의 시점에서도 장기적 민족사의 전망을 상실한 채 한미군사동맹과 주한미군 불가피론을 전제와 상수로 받아들여 쟁점화를 스스로 봉쇄하는 자발적 폐쇄주의와 맹목적 숭미주의를 전면 배격한다. 이런 고질병에서 벗어나 일체의 성역화를 무너뜨리는 탈 냉전성역적 접근으로 주한미군을 근본적으로 재평가하겠다. 또한 이제까지 한국사회의 주류나 주류 미국인들이 보는 대미 예속적 시각이나 그들의 시각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시각으로 그 가운데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사적 핵심과제를 기준으로 주한미군에 대한 재평가와 논의를 전개하겠다.
우리들 대부분은 주한미군의 핵심적 역할은 한반도의 안보, 곧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무조건적으로 믿어왔고 또 믿도록 강요당했다. 그러나 이는 맹목적 믿음이지 구체적인 경험적 사실에 의해 검증을 거치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에 의한 평가는 아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 필자는 먼저 ‘북핵문제’를 계기로 생긴 현존 전쟁위기를 포함하여 탈냉전기인 1990년대 이후 전개된 한반도 전쟁위기를 경험적으로 분석하여 주한미군이 한반도 전쟁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평화의 역군이기보다는 전쟁위기 유발자임을 검증하도록 하겠다.
다음 신한미군사동맹이 현재대로 진행될 경우 주한미군은 평화정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자주와 평화 및 통일의 절대적인 파괴자 및 걸림돌임을 논증하겠다. 이를 바탕으로 평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사적 핵심과제를 구현할 수 있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한반도 평화구도 정착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민족사의 핵심과제인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신한미군사동맹체제의 폐기, 주한미군의 전면 철군(점진적이든 즉각적이든), 한미관계를 군사동맹이 아닌 우호협력관계로 근본적으로 바꿀 것 등을 주장하겠다. 이것이야말로 21세기 초입을 맞은 우리 민족이 진정 나아갈 올바른 역사지향이다.

2. 현존 한반도 전쟁위기(북핵위기)의 실재

현존 북핵위기는 미국이 2002년 10월 북한이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을 시인했다고 주장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결코 시인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미국은 아직 결정적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북․미 제네바 협정 사항의 하나인 중유공급을 끊으면서 사태를 폭발시켰다. 결국 제네바합의라는 귀중한 한반도 평화보장의 방책을 중단시키고는 ‘악의 축’, 선제공격론, 정권교체론을 거론하면서 한반도에 전쟁위기를 지속시키고 있다.
흔히들 북한이 1994년의 ‘제네바협정’을 위배했기 때문에 이번 북핵위기가 발생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는 진실이 아니다. 미국은 제네바 협정에서 북한이 핵동결과 사찰을 수용하는 반대급부로 경수로 2기 2003년까지 제공, 경제제재 및 테러지원국 해제, 북한안전보장, 연간 중유 50만톤 제공, 외교관계 수립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미국이 유일하게 제대로 지킨 것이라곤 중유 제공 50만 톤이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무성과 임동원 당시 외교안보수석 및 우리 통일부가 시인한 대로 핵동결을 차질없이 이행해 왔다. 북미관계의 기본적인 프레임인(Frame) 북미제네바협정 이행률은 북한은 거의 100%이나 미국은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를 겨우 이행하고 경수로를 일부 진척시킨 것으로 고작 25%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98년은 확실한 근거도 없이 금창리 핵무기 개발 의혹만으로 BDU-38이란 모의 핵폭탄 실험까지 하면서 북한에 대한 전쟁위협을 자행했다.
협정위배의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미국 쪽이 협정을 제대로 이행한 북한 쪽을 진범으로 모는 적반하장의 관계를 보고 나는 이를 인간사회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그래서 힘만이 법과 질서가 되어버리는 밀림의 사회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것이 부시미국의 지배적 패권주의(domination-oriented hegemony: 나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인류사회의 보편적 이익이나 상대방의 이익을 헌신짝처럼 무너뜨리는 일방주의를 관철시키는 외교원칙)의 적나라한 발로이다.
물론 미국은 클린턴 정권 하에서도 제네바협정을 제대로 이행하지도 않으면서 금창리 핵위기나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빌미로 BDU-38의 모의 핵폭탄실험 등으로 북에 대한 전쟁위협을 자행했다. 그러나 미국의 민주당 정부는 1999년 미사일 전쟁위기를 계기로 클린턴 정부 말기에 10․12공동성명을 통해서 북미간의 완전한 외교관계 수립과 한반도 냉전체제를 해체하기로 합의함으로써 한반도는 55년만에 평화가 정착하는 듯 했다.
이러한 낙관적 전망은 부시가 대통령이 되면서 일시에 무너지고 말았다(강정구, 2002a). 부시정부는 9․11이전에 이미 외교기조 제1원칙을 미국의 국익을 위한 전쟁불사정책으로 공공연하게 표명하면서 북한에 대한 위협을 자행했다. 9․11을 맞자 이러한 호전정책은 순풍에 돛을 단 격이었다.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몰고, 부시 독트린, 핵태세비밀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 등에서 북한을 핵선제공격 0순위로 설정하는 등 더욱 노골적인 전쟁위기를 조성했다.
이러한 미국의 위협 하에 북한은 지신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서해교전에 대해 남한에 사과를 하는 등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2002년 9월 전격적인 북일정상회담을 열어 평양선언으로 북․일 수교합의를 이루고, 러시아-중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동북아경제협력체의 기반을 남한과 함께 추구하고, 신의주 경제특구를 만들어 개방체제를 본격화하고,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내부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이러한 북한의 움직임은 북미간의 직접적인 협상을 거절하고 북한에 전쟁위협을 가하고 있는 부시행정부에 대한 우회적인 생존권 확보전략이라 볼 수 있다. 곧, 남북관계와 동북아관계를 개선해 미국의 단기적 생존권 위협인 대 북한 전쟁위협에 대비하고, 내부의 개혁․개방과 동북아경제협력체를 통해 경제적 회생을 도모해 장기적 생존권을 확보하자는 전략이었다. 물론 이러한 북한의 노력은 김대중 정권의 지지와 일정정도의 일본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미국은 동북아 5개 국가가 냉전이후 처음으로 추구하는 지역협의체의 태동이라는 탈냉전 지향의 새로운 질서 등장에 불안을 느껴 전격적으로 이제까지 미루던 대 북한특사를 파견시켰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북핵개발 시인 파동’을 일으킨 것이다. 이로써 한반도에 본격적인 전쟁위기를 조성해 동북아 5개국의 경제협력체 태동을 봉쇄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남북한을 궁지에 몰면서, 이에 동조할 조짐을 보였던 일본에 재갈을 물리면서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 6자회담을 진전시켜 북한을 오히려 역포위 하려는 전략을 미국은 현재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부시 미국의 이러한 ‘북한죽이기’에 직면해 핵무기개발 카드를 통해 전쟁 억지력을 확보하고, 개방과 개혁으로 북한을 경제봉쇄해 고사시키려는 미국의 장기적인 생존권 위협에 대처하고 있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특구, 신의주 특구, 경제개혁과 개방, 일본 배상금 해결 등은 경제력 신장 등을 통한 장기적 생명권 확보를 위한 북한의 몸부림이다.
북한에 대한 생존권을 보장해주지 않는 한 북한은 핵무기 개발 카드라는 생존을 위한 방패막이를 놓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개발을 협상카드로 활용해 미국의 대북한 군사위협과 경제봉쇄를 풀려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은 미국이 북한의 생존권을 보장해주면 곧, 안전보장, 외교관계 수립, 테러지원국 해제와 경제봉쇄해제, 원자력발전 대체 에너지 제공이라는 장단기적 생존권을 보장해주면 핵무기 개발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의 선 대북적대정책포기 북한의 후 핵폐기’를 주장했다. 1차 6자회담을 전후해 북한은 미국의 안전보장과 북한의 핵동결 및 핵페기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동시행동의 원칙’을 제안해 유연한 정책을 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1차 6자회담에서 ‘선 핵포기, 후 체제보장 및 관계 정상화’정책에서 더 나아가 “북한이 핵계획을 포기한 다음에야 관계정상화를 목표로 한 미사일, 상용무력, 위조화폐, 마약거래, 테러, 인권, 납치 등의 문제 등에 대한 북미 쌍무대화를 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확인되지 않은 위조화폐, 마약거래, 인권 문제 등까지 의제로 삼자면서 사실상 협상해결을 거절했다.
지난 2차 6자회담에서 중국과 함께 한국정부가 주도성을 가지고 해결을 시도했지만 결국 미국의 강력한 제동에 걸려 진전을 전혀 이루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가 2004년 3월 4일자에 밝힌 바에 의하면 부시는 2차 6자회담 당시 미국대표단에 훈령을 내려 “부시 행정부의 선의는 바닥날 수 있으며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여전히 있다는” 점을 북한대표에 통보하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 더 나아가 4월 체니부통령이 중국-일본-한국을 방문하는 시점에서 미국은 파키스탄 칸박사의 증언을 통해 북한이 이미 핵무기 3개를 확보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이라크전쟁의 수렁에 빠져 부시의 대통령 재선전망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이를 역전시킬 카드로 북핵문제를 악용해 군사적 모험을 벌리려는 선거전략이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이를 위한 준비단계로 미국의 실질적인 전쟁설계자인 체니라는 전쟁광이 중국에다 북한에 대한 ‘대량살상무기 반확산 구상(PSI)’이라는 봉쇄계획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이 이라크전쟁의 수렁에 빠져 있는 한 북핵문제를 폭발시켜 한반도에 당장 전쟁을 감행하기는 힘들 것이므로 이라크전쟁이 해결될 때까지 한반도 전쟁위기는 교착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예견된다.
실재 이라크전쟁이 마무리되는 듯한 2003년 7월에는 페리 전국방장관이나 미 의회 래리 릭스 연구원이 7~10월, 12월 한반도 전쟁위기를 황급히 경고한 것처럼 전쟁위기가 고조되었다. 그러나 정작 한반도 전쟁위기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한국정부는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 채 이웃 나라 중국이 황급히 6자회담을 주선하는 등으로 불길을 잡았다.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된 노무현 당선자는 대통령에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사회의 주류처럼 미국에 대한 맹목적 추종주의로 탈바꿈했고, 이 연장선상에서 한반도 전쟁위기를 자초하는 이라크 전투병 파병을 결정했다.
이러한 한국정부나 16대 국회 및 주류에 우리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를 맡길 수 없다. 그래서 노동자와 농민 등 민중과 시민이 우리의 고귀한 생명권을 스스로 확보하기 위해 반전평화운동의 주체와 역군이 되고 있는 것이다.

3. 탈냉전기 한반도 전쟁위기의 일반적 속성과 미국

뭐니뭐니 해도 인간의 기본권 가운데 기본권은 죽고 사는 문제인 생명권이다. 그런데 이 ‘죽고 사는 문제’인 생명권이 멀리는 6․25 확대전쟁 당시 맥아더(MacArthur)가 무려 26개의 원자탄을 떨어뜨리려던 시점에서부터 외세인 미국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기막힌 현실 속에 우리 모두는 살아왔고 또 살고 있다. 1960년대의 미국 간첩선 푸에블로호(Pueblo) 포획사건, 미국 첩보기 EC121기 격침사건, 76년 판문점 미루나무 절단사건에서부터 1994년 6월 영변핵위기로 인한 전쟁일보 직전까지의 아슬아슬한 순간, 98년 금창리핵위기 조장사건, 또 최근의 ‘악의 축’ 전쟁위협과 2003년 이후 지속되는 현존 전쟁위기 등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죽음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살아야 했다.
특히 1989년 탈냉전이 이루어져 지구촌은 평화와 인권의 새로운 역사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하면서 이제야 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되겠다는 안도감을 우리는 가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동서냉전에 의해 분단과 대결의 역사를 강요당했던 이 곳 한반도에서도 응당 탈냉전의 역사구도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탈냉전의 시점에서도 한반도 속의 미국은 오히려 더 사악한 냉전전사다운 모습을 보여 주어 전쟁위기는 오히려 냉전시대를 능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남한사람은 자기의 죽고 사는 문제가 이렇게 경각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모른 채 ‘마음 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의 결정권이 거의 미국에 달려 있고 이에 관한 정보가 우리들에게는 철두철미 차단되어 실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1999년 5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