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조작 보도 때마다 얼굴 나와, 아이들이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 오마이뉴스25.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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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조작 보도 때마다 얼굴 나와, 아이들이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
[현장] ’2025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대회 – 목소리들’… 이시우·유우성·유영호 등 국보법 피해자들 참석
김태중(ktj6288)
25.07.12 11:32ㅣ최종 업데이트 25.07.12 11:32
큰사진보기 국회에서 진행된 2025국가보안법피해자증언대회
▲국회에서 진행된 2025국가보안법피해자증언대회 ⓒ 김태중관련사진보기
11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4간담회의실에서 ’2025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대회 – 목소리들’이 진행됐다. 민족통일애국청년회가 주관한 이번 증언대회는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 진보당 정혜경 의원, 양심수후원회, 천주교인권위원회, 4.9통일평화재단, 자주연합(준)이 공동주최했으며 더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함께했다.
이날 증언대회에 함께한 국가보안법 피해자인 이시우 사진작가·유우성씨·유영호 박사 그리고 국가보안법 전문 장경욱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이 인간의 삶을 무너뜨리는 악법이라고 증언했다.
첫 번째 증언자로 나선 이시우 작가는 강화도에 거주하는 평화운동가로 유엔사령부의 문제점에 대해 꾸준히 제기해 온 바 있다. 그는 2004년 기자 자격으로 미국 대사관이 주최한 판문점 행사에 초청돼 유엔사 경비대 탄약고에 있는 화학무기 표식을 촬영했고 대사관과 미군 담당자의 확인을 거쳐 공개한 일로 공안당국의 표적이 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이시우 작가는 “수배를 당한 후 2007년 4월 19일에 체포됐고 그때부터 40여 일간 곡기를 끊었다. 단식 투쟁은 마무리했지만, 국가보안법의 피해를 당했다는 것을 남기기 위해 그때부터 수염을 자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또 이시우 개인에게 부여된 국가보안법 혐의만 28개로 당시 담당 변호사들로 하여금 ‘국가보안법의 백화점’같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전했다.
이 작가는 “당시 사건을 통해 스스로 예술가라는 것을 처음으로 자각했다. 그리고 나는 국가보안법 상 자기 검열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미군기지, 한미연합군사훈련 문제 등 2007년에 진행하던 사진 작업을 안 하고 있더라”며 “무슨 변명을 하든, 자기 검열을 하고 있더라”고 돌아보기도 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분단체제의 산물이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너무 점잖은 표현이다. 국가보안법은 원한체제의 산물이다. 사문화된 것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 속에서 심리적 장벽을 세워 영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소한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증표가 나와야 이 심리적 장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증언 대회에 함께한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이시우씨 사건은 변호사로서 제 첫 번째 국가보안법 사건이었고 쉽지 않았지만 승리했던 소중한 기억”이었다고 회고했다.
“간첩조작사건 보도 때마다 내 얼굴 나와, 아이들이 물어보는데…”
▲국회에서 진행된 2025국가보안법피해자증언대회 ⓒ 김태중관련사진보기
두 번째 증언자로 나선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 관련 사건은 박근혜 정부 때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씨에게 오빠가 간첩이라는 위증을 강요하고 중국 출입경 기록까지 위조하는 등 공안당국의 반인권적이고 비상식적인 행태가 드러난 사례다.
유우성씨는 “북한이탈주민 전형으로 서울시 공무원이 됐다. 그러다 국정원 직원이 찾아왔다. 국정원으로부터 북한의 가족들을 이용해 대한민국을 위해 일을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며 “그때부터 전화가 국정원에 도청이 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탈주민이 국정원의 만남을 거절할 수가 없다. 탈북자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도 가능하고 돈을 번 것을 보내주기도 하므로 국정원 앞에서 작아질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과정 중에 유우성씨는 국정원과 협의해 여동생 유가려를 한국으로 데려왔으나 돌아온 것은 유가려씨의 감금과 유우성씨의 ‘간첩 딱지’였다. 당시 2012년은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됐고 그 과정에서 국정원의 댓글 조작 사건이 드러나 국정원 개혁 및 해체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던 시기다.
유우성씨는 국정원 직원 30명에 의해 거주하고 있던 아파트에서 체포를 당했고 국정원에 감금됐다. 유우성씨는 이 시기를 ‘버텼다’는 단어로 회상했다. 이 과정에서 몸무게가 12일 만에 10kg이 빠지기도 했다. 그의 죄목은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죄였다.
이후 유우성씨가 간첩이라는 증거 자체가 모두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1심에서 전체 무죄를 받았다. 그러자 공안당국은 2심에서 유우성씨의 중국 출입경 문서까지 조작했으나 유우성씨는 만 3년 만에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유우성 씨는 “그때 당시 간첩이 서울시까지 침입해서 탈북자 명단 만 명을 북한에 넘겼다는 보도만 대서특필 됐고 여전히 시민들에게는 탈북자는 간첩이라는 선입견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담당 공안 검사였던 이시원은 처벌 받기는커녕 윤석열 정부에서 중용됐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어 “여전히 간첩 조작 사건이 보도되면 내 얼굴이 참고 자료로 방송에 나오기도 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아빠가 왜 저기에 나와?’라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 누구보다 당당하지만 아이들에게 설명하기가 어렵더라”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끝까지 목소리 내겠다고 했다.
“국보법이 있는데, 사상·양심의 자유가 존재할 수 있는가”
세 번째 증언자로 나선 유영호 박사는 북한 영화를 전공하고 저서를 서술해 온 북한 영화 전문가다. 공안당국은 연구 목적의 북한 자료 열람까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몰아 ‘특정인’의 북한 연구는 위법이 될 수 있다며 수사를 벌였다.
유영호 박사는 2011년 소위 ‘왕재산 사건’ 관련자가 구속된 6개월 뒤에 압수수색 당했다. 그리고 4년 뒤인 2015년 박근혜 정권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유 박사는 공안 당국이 유 박사의 대학생 시절 동아리 소식지 창립선언문이나 재일 조선학교 방문 소감을 작성한 블로그 글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자료로 짜깁기한 것을 두고 “국가보안법 수사는 마치 모자이크 같다. 누구나 국가보안법의 표적이 된다면 과거에 했던 말, 행동 등을 짜깁기 해서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 영화 전문가인 자신에 대해 이적표현물 소지죄로 서적류는 무죄고 영화·영상물은 유죄 판단이 나온 것도 아이러니라고 밝혔다. 당시 압수수색물이었던 ‘조선노동당량사’는 박사 과정 교재였고 해당 수업의 교수는 후에 국정원장이 된 서훈 원장이었다는 점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상식적이라고 꼬집었다.
유영호 박사는 마지막으로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가 과연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존재할 수 있는가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자로 참여한 장경욱 변호사는 “한국에 미군기지가 존재하고,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있는 한 국가보안법이 흔들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적어도 미국 패권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 증언대회를 주관한 민족통일애국청년회는 앞으로 릴레이 증언대회를 진행하는 등 이재명 정부와 22대 국회 내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위해 여론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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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진행된 2025국가보안법피해자증언대회 ⓒ 김태중관련사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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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진행된 2025국가보안법피해자증언대회 ⓒ 김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