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은 내 삶을 지웠다” 국회서 터져 나온 20년 고통의 기록들..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대회-창업일보25.7.13
“국가보안법은 내 삶을 지웠다” 국회서 터져 나온 20년 고통의 기록들..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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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5.07.13 07:39
기자명김지훈 기자 press4@news33.net
[공정언론 창업일보] “그 법은 내 삶을 지웠다” 11일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대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4간담회의실. 작은 공간 안이 이례적인 긴장감과 먹먹함으로 가득 찼다.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대회 – 목소리들’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번 행사는 단순한 법률 비판이나 개정 논의의 자리가 아니었다. 그곳은 한때 ‘간첩’, ‘이적 표현물 소지자’, ‘의심스러운 연구자’라는 이유로 삶의 터전과 가족, 명예, 직업을 앗긴 이들의 절규가 녹아든 증언의 현장이었다.
이날 행사는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국회의원과 진보당 정혜경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민족통일애국청년회, 양심수후원회, 천주교인권위원회, 자주연합(준), 4.9통일평화재단 등이 주관했다. 후원은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이 맡았다.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를 조각낸다’ – 사진작가 이시우의 고백
첫 번째 증언자는 사진작가 이시우 씨였다. 그는 비무장지대(DMZ)를 중심으로 한국전쟁의 상처와 평화를 사진으로 기록해온 저명한 예술가다. 그러나 2004년, 미 대사관 초청 행사에서 유엔사 탄약고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아, 무려 28개 조항으로 기소됐다. 그에 대한 공안당국의 감시는 4년 동안 계속됐고, 그의 사진 작업은 중단됐다.
이시우 씨는 “검찰조차 나에게 적용된 혐의를 ‘국가보안법의 백화점’이라고 표현했다. 예술가로서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라고 성토했다. 그는 1심부터 대법원까지 전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예술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믿음이 무너졌다. 지금도 셔터를 누를 때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예술의 자유와 국가보안법의 충돌을 실감케 했다.
‘간첩의 누명을 쓴 탈북 공무원’ – 유우성 사건, 그 이후
이어 마이크를 잡은 유우성 씨는 서울시 최초의 탈북자 출신 공무원이자, 간첩 조작 사건의 대표 피해자다. 그는 북한을 왕래한 사실이 있다는 이유로 국정원에 협조 요청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했고, 이후 ‘간첩’으로 몰려 체포됐다. 수사과정에서 그의 여동생 유가려 씨는 강압적인 수사를 받으며 허위 자백을 강요받았다.
유 씨는 “나는 무죄를 받았지만, 이미 삶은 망가졌다. 우리 가족은 해체됐고, 아이에게 ‘아빠가 왜 뉴스에 나왔냐’는 질문을 들어야 했다”며 “국가보안법은 국민을 지키는 법이 아니라 권력을 지키는 법”이라고 분노를 토했다. 그의 증언은 간첩조작 사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분명히 보여줬다.
‘연구도 금지의 대상이 되는가?’ – 북한 영화 연구자 유영호 박사의 고통
유영호 박사는 영화이론과 북한영화 전문가다. 그는 대학에서 북한영화를 교육하고 관련 자료를 학생들과 공유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문제는 그가 사용한 자료들이 대부분 논문 작성, 수업용 교재였다는 점이다.
그는 “수업에 사용한 조선로동당략사, 북한영화 DVD, 북한 관련 이메일, 심지어 학생 동아리 창립선언문까지도 증거로 제출됐다”며 “검찰은 학술적 목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소를 강행했다”고 설명했다. 유 박사는 1심에서 영상물 유포만 유죄, 나머지는 무죄라는 반쪽 판결을 받았으나, 이후 항소심과 대법원에서는 전면 무죄를 받았다. 그는 “국가보안법은 학문을 검열하고 교수와 학생을 감시하게 만든다. 이게 학문의 자유인가?”라며 회의적인 시선을 던졌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폐지’ 외치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민형배 의원은 “국가보안법은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모두 억압하는 법이다. 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폐지안을 다시 상정하겠다”고 강조했다. 정혜경 의원 역시 “국가보안법은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법이다. 민중을 통제하는 구시대적 도구로 더 이상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참석한 장경욱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은 미국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거나, 한반도 평화 문제를 논의하는 시민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로 악용되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다시 시작된 국민 행동, 릴레이 증언 이어질 것
이번 ‘국가보안법 피해자 증언대회 – 목소리들’은 단발성 행사가 아닌, 향후 릴레이 증언과 거리 캠페인으로 이어질 계획이다. 민족통일애국청년회와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은 “피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국민 공감대를 넓히고, 국회의 입법에 압력을 더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살아 있고, 여전히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억누르는 법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자유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보안법,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묻는다
이번 증언대회는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실상을 폭로한 생생한 경고장이었다.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싸움의 시작은, 피해자들이 용기 있게 꺼낸 ‘목소리들’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데서 시작된다.